아주경제 박현준 기자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웹툰을 만들 수 있다. 웹툰의 내용만 있다면 그림은 하나씩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만든 사이트 ‘툰부리’가 있기 때문이다. 툰부리에서는 전문 작가부터 아마추어 작가, 일반인의 작품까지 다양한 웹툰을 만날 수 있다.
이 사이트에는 매일 같이 올라오는 웹툰이 있다. 웹툰 작가 윤서인(40)씨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리는 ‘조이라이드’ 시리즈다. 이 작품은 윤 작가가 어제 겪었던 일, 방금 생각난 일 등이 웹툰 소재로 등장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작가의 생각을 그리다 보니 굳이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컴퓨터를 켤 때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립니다. 그냥 현재의 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거죠. ‘내일 해야지’하는 생각 없이 그리다 보니 습관이 됐습니다”
윤 작가는 그림의 완성도보다 현재 자기 생각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 시의성을 갖추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현재 생각을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어젯밤에 펼쳐진 소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들을 소재로 삼아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방식이다. 생각을 전달하는데 더욱 집중하다 보니 그림은 레이어 없이 한 장에 배경과 등장인물을 모두 그린다. 보통 작가들이 배경 레이어는 따로 두고 인물을 덧입히는 것과 다른 방식인데 다른 레이어를 찾는 동안 새로 그리는 것이 더 빠르고 가볍게 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솔직하고 가감 없이 자기 생각을 전달하다 보니 뜻하지 않은 오해도 샀다. 일본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점을 우리나라 문화와 비교해 그린 책이 친일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독자들은 일본을 미화하고 우리나라를 비하했다며 친일이라는 딱지를 그에게 붙이며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기행문에 그치지 않고 같지만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저 일본과 우리를 비교하고 싶었을 뿐인데 독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10여 년 전의 일이라 그는 돌이켜보면 표현하는 데 있어 독자의 입장을 좀 더 헤아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가 일본과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말하고 싶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 우경화 움직임을 보이는 측면은 당연히 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인 그다.
윤 작가가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툰부리다. 김요한 서울도시가스 부사장과 의기투합해 지난해 3월 법인을 설립했다. 서울 홍대 근처에 마련한 사무실로 출근해 그림을 그리고 사이트도 관리한다. 툰부리는 스티커 붙이듯이 캐릭터의 각종 신체 부위를 가져와 만화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로 누구나 할 수 있다. 만화의 큰 완성도를 바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만화를 만들고 갖고 노는 서비스라고 설명한다. 사이트에는 다양한 웹툰들이 올라오는데 하루 방문자가 3000명 수준으로 인기작이 나오는 날엔 만 명도 훌쩍 넘어선다. 광고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사용자들이 만화를 자율적으로 퍼뜨리다 보니 자연스레 알려졌다.
그는 툰부리에서 아무나 만화를 그리면서 많은 이들이 정보와 재미를 얻는 공간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현재 평생 당뇨병만 연구한 할아버지가 당뇨와 관련된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읽기 쉬운 만화를 통해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의학 정보를 재미있게 얻을 수 있다. 윤 작가는 “콘텐츠를 누구나 쉽게 만들게 하고 싶다”며 “사람의 본능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자신의 의사를 남들 앞에서 표현하는 것에 서툰 우리나라 국민이 조금이라도 자기 생각을 쉽게 펼쳤으면 하는 것이 툰부리의 철학이자 목표이다.
그는 웹툰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웹툰은 ‘순정만화’로 시작한 강풀 작가가 만들기 시작해 이후 작가들이 쏟아져 포화상태에 달했다면, 이러한 포화상태를 깬 것이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다. 웹툰에 관심이 없던 직장인까지 웹툰의 세계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윤 작가는 이처럼 ‘미친 만화가’가 좀 더 많이 나와 시장을 더욱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자들이 무엇을 좋아할까 연구한다”며 “예를 들면 중고등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던 중 나온 작품이 고등학생의 이야기인 갓하이스쿨, 꽃가족 등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댓글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국내에서는 인기를 얻지 못하는 영화도 해외에서는 작품상을 받는 것을 보면 국내 시장 많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로 가기 위해 공격성 댓글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윤 작가는 단기적으로는 툰부리에 전념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업만 하기엔 그의 끼와 열정이 너무 크기에 조이라이드외에 인생 전체를 그리는 작품도 구상 중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 내가 빠진 만화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