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4월 삼성전자와 LG전자 수뇌부와 잇따라 회동한 뒤 불과 100여일 만에 국내 업체와의 선 긋기에 나선 듯한 모습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회사로 편입된 모토로라에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한편 독자 운영체제(OS)인 ‘타이젠’ 보급 확대를 추진 중인 삼성전자를 경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던 구글과 국내 업체 간의 관계 악화를 암시하는 듯한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전문 TV 프로그램인 ‘천하재경(天下財經)’은 지난 11일 구글이 차세대 태블릿 PC 제조사로 대만 업체인 아수스를 선택했다고 보도했다.
구글은 10인치 화면을 탑재한 ‘넥서스 10’을 삼성전자를 통해 위탁 생산했다. 넥서스 10은 애플 아이패드의 대항마로 부상하면서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이같은 상황에서 후속작 제조사로 삼성전자 대신 대만 업체를 낙점한 것이다.
이와 함께 구글은 차기 스마트폰도 자회사인 모토로라를 통해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LA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구글이 연말께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스마트폰 신제품의 위탁 생산을 모토로라에 맡길 계획이라고 전했다.
가장 최근에 출시됐던 ‘넥서스 4’는 LG전자가 생산했으며 전작인 넥서스S와 갤럭시 넥서스는 삼성전자가 생산을 맡았다.
구글의 내년 실적을 견인할 신제품 제조사 후보에서 국내 업체들이 배제된 것이다. 구글은 미국의 쇼핑 시즌인 11월 블랙프라이데이와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신제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같은 상황 변화는 100여일 전만 해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래리 페이지 CEO 등 구글 수뇌부는 지난 4월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등을 만나 향후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구글 측은 삼성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력에 대해 큰 관심을 표하며 구글글래스 등 현재 개발 중인 제품과의 접목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와도 스마트폰과 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2011년 거액을 투자해 인수한 모토로라의 실적 개선이 시급한 과제가 되면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인텔과 함께 타이젠을 개발하면서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구글의 심경 변화를 가져온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내놓기로 했던 타이젠 스마트폰 출시 시점을 연기하는 등 타이젠 개발 및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관련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종균 삼성전자 IM부문 사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이젠을 주력 플랫폼으로 집중 육성하고 적용 분야도 자동차 등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며 타이젠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4월 구글 수뇌부가 방한하며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와의 관계 악화설을 일축하려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며 “그동안 안드로이드 동맹 관계로 묶여있던 구글과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업체 간의 간극은 더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