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그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2일)을 넘기는 ‘늑장 처리’를 되풀이해왔지만 이번처럼 해를 넘겨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처리하기는 헌정사상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19대 국회가 ‘쇄신 국회’를 전면에 내걸고 출범했지만, 당리당략에 매몰돼 나라 살림살이의 발목을 잡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5년만의 첫 예산안 여야 합의처리라는 기록도 무색해졌다. 다만 해를 넘긴 지 6시간여만에 예산안이 처리되면서 ‘준예산 편성’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예산안 처리가 늦어짐으로써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342조원(총지출 기준) 규모의 2013년도 예산안을 가결했다. 내달말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첫 살림살이이기도 한 예산안은 정부안에 비해 5천억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는 4조9천100억원이 감액되는 대신 복지 및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등을 중심으로 4조3천700억원이 증액된데 따른 것이다. 각 분야 중 국방 예산이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주요 감액사업으로는 예비비 6천억원과 공자기금 예수이자상환 7천852억원 외에도 △차기 전투기(FX) 1천300억원 △K-2 전차 597억원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 564억원 △대형 공격헬기 500억원 △현무2차 성능개량 300억원 등 국방 예산이 대거 포함됐다.
하지만 복지분야 예산이 대폭 증액, 총지출의 30%에 육박하는 복지예산이 마련되면서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사실상 보편복지의 시작이다.
정부가 분류한 분야별 예산안을 살펴보면 복지분야 예산은 2012년보다 4조8천억원 늘어난 97조4천억원이지만, 여기에 민간위탁 복지사업까지 합치면 사실상 복지예산은 103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대학등록금 부담완화, 사병월급 인상 등 복지확충에 방점을 둔 ‘박근혜예산’을 넣으면 복지예산 규모는 더욱 커진다.
국회의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박근혜 예산’은 2조4천억원 증액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중 증액이 이뤄진 부분은 △0∼5세 무상보육 △육아 서비스 개선 △맞벌이 부부의 일-가정 양립 △대학등록금 부담완화 △사병월급 인상 △중소기업취업 희망사다리 △저소득층 사회보험료 지원확대 등이다.
하지만 ‘박근혜 예산’ 마련을 위해 검토해온 국채발행 계획은 백지화됐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실천과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재정부담 등을 우려해 국회 최종 심의과정에서 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예산안 처리의 최대 장애물은 제주해군기지 예산(2천9억6천600만원 규모)이었다.
여야가 당초 부대의견을 달아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원안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전날 밤 본회의에서의 예산안 처리에 임박해 부대의견 내용을 놓고 이견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강창희 의장 중재로 네차례의 릴레이 원내대표 협상 끝에 기존 부대의견에 명시된 3개항의 합의 사항에 ‘3개항을 70일 이내 조속히 이행,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한 후 예산을 집행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으로 절충안을 도출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예산결산특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의 수정안을 공동으로 마련해 본회의에 제출했으며, 국회는 오전 4시 정각 본회의를 속개, 예산 부수법안을 의결한 뒤 오전 6시4분께 예산안을 처리했다.
국회는 예산안 처리에 앞서 예산 부수법안인 세제 개정안 18건도 일제히 처리했다.
통과된 법안에는 9억원 이하 주택에 취득세율 2%를 적용하는 내용의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포함됐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취득세율 1% 인하조치가 작년 12월31일로 종료됐지만, 별도로 감면조치를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종전의 2% 세율을 적용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으로, 사실상 취득세율이 2배로 오르면서 부동산 시장에 적지않은 충격이 예산된다.
또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4천만원에서 2천만원을 인하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대기업의 최저한세율을 14%에서 16%로 인상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탈세제보 포상금 한도를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인상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 등도 함께 처리됐다.
민주당은 소득세의 38%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1억5천만원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소득세법 수정안과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수정안 등을 본회의에 제출했으나, 표결 결과 부결됐다.
이와 함께 국회는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재정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중교통 육성·이용 촉진법 개정안(택시법), 대형마트의 영업제한 시간을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하고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월 2회’로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대형마트규제법)도 처리했다.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내정자에 대한 임명 승인안도 가결됐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