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에 따르면 2월18일 육군훈련소 30연대 4중대 2소대 소속 정모 훈련병은 훈련소 지구병원을 찾아 군의관에게 상급병원 진료를 요청했지만 군의관은 “현재 증상으로는 필요없다”며 거부했다.
이미 8차례 연대 의무대와 훈련소 지구병원에서 감기와 중이염 증상 등으로 처방을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던 정 훈련병은 상급병원 진료를 다시 한번 애원했으나 군의관은 “그만 나가라”며 기간병을 불러 정 훈련병을 진료실 밖으로 쫓아냈다.
기간병에게 끌려나온 정 훈련병이 복도에서 우는 것을 본 지구병원 간호장교는 그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정 훈련병이 “민간병원이나 다른 병원으로 보내달라, 소대장에게 전화를 해달라”라고 하자 간호장교는 군의관에게 상태를 물어봤다. 하지만 “상급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하지만 그럴 정도는 아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정 훈련병은 이날 상황에 대해 쪽지에 “간호장교에게 울면서 살려달라고 했지만 묵살됐다”고 적었다. 이 쪽지는 정 훈련병이 목숨을 끊었을 때 입고 있던 옷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소대장 양모 중사는 ‘면담/관찰기록’란에 “논산병원(지구병원) 간호장교 통화결과 귀에 전혀 이상없다. 꾀병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상없다고 군의관이 말을 해도 민간병원에서 진료받고 싶다. 더 큰 병원에 보내달라. 못 믿겠다며 항의하고 우는 등 소란을 피움”이라고 기록했다.
심지어 정 훈련병이 지구병원에서 진료받은 날은 2월18일이었음에도 소대장은 날짜를 2월16일로 적었다. 2월16일 정 훈련병이 치료를 받은 곳은 지구병원이 아닌 연대의무실이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환자가 아프다는데 원인을 모르겠으면 다른 병원에 가게 하거나 치료방법을 달리하는 게 상식이다. 애원하는 환자를 경비원을 불러 쫓아내는 것이 의사가 할 일인가. 민간병원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군병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고 비판했다.
2월18일 사건 이후 정 훈련병은 꾀병환자로 낙인찍혔다. 목숨을 끊기 하루 전인 2월26일에는 다른 훈련병 앞에서 소대장으로부터 욕설을 들었다.
정 훈련병은 26일 지구병원 외진 예약이 돼 있었으나 이날은 지구병원 이비인후과 휴진일이라 진료일이 28일로 변경됐다. 진료일이 변경됐다는 통보를 받지 못한 정 훈련병은 외진 대상자 명단에서 자신이 빠진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소대장은 전후 사정을 파악하지 않고 “왜 자꾸 시키는 대로 안하고 떼를 쓰느냐. 똑바로 서! 야! 인마! 이 새끼야! 군의관이 문제없다고 하는데 왜 자꾸 가려고 해. 너 앞으로는 귀 아픈 것으로 외진 갈 생각하지마”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 일이 있고 하루 만에 정 훈련병은 생활관 2층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 훈련병의 옷에서는 ‘엄마, 자랑스럽고 듬직한 아들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2월4일부터 귀가 먹먹했는데 아직 안 나았어요. 진짜 불편해서 의무실과 병원 많이 갔는데 이젠 아예 꾀병이라고 합니다. 혹시나 식물인간이나 장애인 되면 안락사해주세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원래 없는 셈 해주세요. 정말 미안해 엄마. 사랑해’라는 유서가 발견됐다.
유가족은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보는 시선과 앞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정 훈련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며 분개했다.
정 훈련병의 어머니 강모씨는 “군의 조사 결과를 듣고 보름 정도 목이 메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책임 회피성 발언만 적어놨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강씨는 “군대는 왜 아프다고 하는데 들어주지 않나요. 말 안 하면 알아주지 않고, 말하면 거짓말쟁이로 몰아 욕이나 하고. 자기들이 불러서 간 거잖아요. 애가 죄인인가요. 이렇게 해놓고 어떻게 우리 애보고 살라고 한 건가요”라며 오열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