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홍수와 구제역, 혹독한 한파 등으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게 세계식량계획(WFP)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판단이지만 미국과 한국 등 전통적인 주요 대북 지원국들이 식량지원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전직 국가수반의 모임인 '엘더스(The Elder's)' 회원으로 카터와 함께 방북길에 오른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도 "유엔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350만명이 기근에 매우 취약한 상태로 분류되고 있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대북 식량지원을 호소했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을 중단한 배경은 북한 정권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위협을 지속적으로 조장하면서 핵 개발 의지를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해 천안함 사건에 이어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까지 발생했고, 모든 책임을 북한 탓으로 돌리고 있는 정부로서는 대북 식량지원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상태다.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식량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단호한 입장이다. 미국 역시 강경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대북 식량지원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도 역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더 이상 지원시기를 늦출 수 없다면서 긴급 식량지원 활동에 착수했다.
WFP는 지난달 29일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는 북한 주민 350만명에 대한 긴급 식량지원 활동을 개시했다. WFP의 지원은 춘궁기인 5월부터 7월 사이에 어린이와 여성, 노인 등 취약계층에 식량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향후 1년 동안 2억 달러 상당의 식량을 북한에 보낼 계획이다.
우리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을 외면하면서 내세우는 또다른 표면적인 이유는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으로 보낸 쌀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WFP가 대북 식량지원을 개시하면서 수시로 현장에서 식량 분배 상황을 점검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북한 당국도 이례적으로 '모니터링 불가' 방침을 철회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우려는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통일부는 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 대신 주민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결국 대북 식량지원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굶주리는 주민들을 위한 것이므로 현재 정부는 스스로 공언한 정책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셈이 된다.
정부는 북한이 사과할 때까지 계속 대북 식량지원을 동결하면 북한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