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 하고, 아픈 곳은 치료가 필요하다. 국토개발도 마찬가지다. 백두대간을 따라 태평양으로 향하는 한반도는 곳곳이 개발 몸살에 신음하고 있다. 몸살은 휴식과 치료를 동반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졸속으로 만들어진 유사·중복된 사업계획은 조정돼야 한다. 2011년 2월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국토개발계획은 한반도 전체면적의 120%에 달한다. 지금 진행중인 계획을 모두 실현하려면 국토 면적을 현재보다 20% 정도 늘려야 하는 셈이다. 따라서 수요가 부족한 지역의 개발 계획은 과감히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등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2020년 한반도가 동북아 관문이자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과도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토의 현 상황을 재점검하는 일이 그래서 필요하다. 아주경제는 2011년 신묘년을 맞아 한반도가 처한 국토개발계획 실태를 들여다보고, 2020년 국토개발의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무주리조트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전북 무주군 안성면 금성리. 덕유산 자락에 있는 이 지역 주민들의 심기는 요즘 무척 불편하다.
인근 마을인 덕곡·두문마을 등과 함께 무주기업도시로 개발될 계획이었지만,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기업도시 개발계획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을 떠올리면 분노와 함께 서러움마저 복받쳐 올라오는 것이 이 지역 주민의 한결 같은 속내다.
두문마을회관에서 만난 최일섭 이장은 “애당초 주민들의 반대에도 사업을 추진하더니 상황이 여의치 않자 결국 (기업도시를)포기했다”며 “그동안 토지 정비나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해 입은 물질적·정신적 피해는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무주기업도시는 당초 안성면 일대(767만2000㎡)에 레저휴양지구를 비롯해 시니어휴양지구, 비즈니스지구, 관광위락시설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시행자인 대한전선(96%)과 무주군(4%)이 자금 부족 등을 이유로 손을 떼면서 결국 무산된 것이다. 주민들은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묶이면서 행사하지 못했던 재산권과 그에 대한 심리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무주 뿐만 아니라 태안기업도시 등 정부가 기업도시로 지정한 나머지 5곳도 제대로 사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아직까지 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한 곳도 있다.
공공기관 이전을 계기로 지방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조성되는 혁신도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의 일환으로 부산 등 10곳에 혁신도시를 지정, 개발에 착수했으나 사업 속도는 더디기 그지 없다.
혁신도시로 이전해야 할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은 124개. 이 가운데 74곳이 부지를 매입했을 뿐이며 부지조성 공사가 절반 이상 진행된 곳도 민간에 판매된 주택용지 등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곳곳에 부지조성 공사를 한다고 공사판을 벌여 놨지만 공공기관 이전과 함께 정작 중요한 민간투자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수도권 2기 신도시 문제도 사전 정확한 수요예측 없이 만들어진 탁상행정이 초래한 과개발 사례다.
2기 신도시 가운데 하나인 경기도 양주 신도시. 양주신도시는 서쪽 회천지구와 동쪽 옥정지구을 중심으로 1575만㎡ 면적에 6만가구 정도를 수용하게 된다. 양주신도시와 붙어있는 덕정택지개발지구까지 더하면 이 일대는 분당신도시와 맞먹는다.
현재 부지조성 단계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동주택용지 등 용지 판매실적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분양과 수익성을 확신하지 못한 건설사들이 부지매입을 꺼리면서 신도시 개발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이다.
덕정지구에서 중개업을 하고 있는 K씨는 “신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나오면서 일대 부동산 시세가 큰 폭으로 오르는 등 기대가 컸던 적도 있다”며 “하지만 교통문제나 직장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개발된다고 해도 텅빈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요사업만 40개...유사·중복 심각
한반도 과개발의 실태는 수치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개발사업은 물론, 지방에서 진행중인 지역개발사업까지 무리한 겹치기 계획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등 정부 부처와 국토연구원 연구결과를 토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중앙정부가 지정한 각종 지역·지구는 53개 정도다. 여기에 맞춰 지정됐거나 추진중인 지역·지구는 1556곳에 이른다.
지정면적은 12만46㎢로 한반도 면적 10만210㎢를 초과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주요 국토개발사업(계획 포함)만 40개(지자체 자체사업 포함)가 넘는다.
세종시 건설을 비롯해 혁신도시·기업도시·동서남해안벨트 개발사업·4대강살리기사업·새만금사업·2기신도시·보금자리주택·경제자유구역·관광특구·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첨단의료복합단지 등 굵직굵직한 개발사업들이 전 국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현재 ‘00지역·지구 지정 중‘인 셈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양양군은 광역개발권(강원 동해안권), 개발촉진지구, 특정지역(설악단오문화권), 관광특구, 해안권개발지역 등 5개 지역·지구로 지정돼 있거나 지정예정이다. 양양군과 같이 지역·지구가 중복 지정돼 있는 곳만 11개 시·군에 이른다. 또 신발전지역과 내륙권 초광역벨트 예정지역도 70% 이상이 중복돼 있다.
이처럼 과도한 개발계획은 국가재원 낭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추진중인 주요 국책사업에 책정된 총사업비만 수백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10개 권역이 지정돼 66.2%의 예산을 집행한 광역개발권역 사업의 경우 총사업비가 230조원을 웃돈다. 이 가운데 앞으로 전체 사업비의 33.8%인 약 80조원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정부가 올해부터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동서남해안벨트 조성 사업에는 75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도 약 22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이밖에 세종시도 22조5000억원, 혁신도시 7조2000억원, 기업도시(무주 제외) 6조5000억원 등이 필요하다.
◆과개발은 결국 국가경제에 짐
이러한 국토 과개발은 당초 기대했던 지역개발을 통한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열매가 아닌 빚과 지역갈등이라는 더 큰 손실로 다가오고 있다.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의 파산 위기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사업시행자는 물론 건설사·해당 지역 주민 모두의 피해로 이어지고 결국 국가 경제에 짐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조사한 2009년말 기준 지자체의 부채규모는 약 26조7000억원 정도다. 지방공사가 35조원, LH는 109조원에 이른다. 문제는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고 있다는 데 있다. LH의 경우 지난 2005년 부채가 34조원에 불과했으나 5년 뒤인 2010년에는 75조원이 증가한 109조원에 이른다.
과개발로 인한 폐해는 이 뿐만이 아니다. 환경파괴는 물론 토지 이용의 효율성 저하 문제도 낳고 있다.
지구 지정을 해놓고 사업이 오랫동안 착수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의 반발과 정책에 대한 불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재산권 행사는 하지 못하게 하면서 개발사업은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땅값 등 부동산 시장 폭등도 심각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각종 개발지구지정 이후 해당 지역 땅값은 1년새 평균 26.5%, 3년 동안 122.8%, 5년간 127%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장밋빛 개발계획이 지역 땅값을 올려놓고, 높아진 땅값은 사업성을 떨어뜨려 오히려 개발계획 발표가 사업의 발목을 잡는 현상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토연구원 장철순 연구위원은 "(개발)지역·지구로 지정되면 대부분 지역의 땅값이 1.4배에서 3배까지 올라 사업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이는 각종 계획수립과 제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수요가 부족해 서둘러 사업이 진행하지 못해 일어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현재 발표된 개발계획이나 추진 사업 가운데 상당수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 LH의 사업구조조정이다. LH는 전국에 걸쳐 진행해온 414개 사업을 재검토하는 등 대수술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아직 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138개 지역만 해도 195.6㎢, 143조원에 이른다. LH가 사업을 취소하는 사업장은 해당 지역을 위해서나 국가 이익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과개발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정부가 경제자유구역(FEZ) 가운데 일부 지역을 해제키로 한 것도 과개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다. 경제자유구역은 인천·부산진해·광양만권·대구경북·새만금군산·황해 등 6곳. 인천·부산진해·광양은 2003년, 나머지 지역은 2008년에 지정됐다. 6개 구역은 다시 93개 단위지구로 나눠 외국인 투자유치 등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 등을 추진해왔다. 이번에 해제된 면적은 90.51㎢로 전체 지정면적의 15.9%이며 여의도 면적의 10.8배에 달하는 규모다.
사업의 현실성이 없거나 개발 수요에 비해 과다하게 지정되고, 장기간 개발 지연에 따른 심각한 주민 재산권 침해 등의 문제를 인정한 것이다.
송도에 거주하는 이상호(43)씨는 "국내 기업 유치도 잘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기업이 들어올리가 있겠느냐"며 "이름만 자유경제구역이지 왜 지정했는지 모르겠다"고 힐난했다.
변창흠 세종대(행정학과) 교수는 "지정만 되면 다 이익인 줄 안다. 처음 국립공원을 지정할 때도 서로 하려고 했다가 재산권 행사 등 제약이 뒤따르자 뒤늦게 해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며 "신도시, 기업도시, 과학벨트 등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