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게임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게임 이론으로, 반도체 업체 간의 출혈 경쟁을 의미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 기관인 디램익스체인지는 27일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의 내년도 D램 시설투자비(CAPEX)가 올해보다 80%가량 늘어난 78억5천만달러(9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0년 사이 가장 높은 이같은 시설투자비 증가율은 세계 반도체업체들이 수요 증가에 발맞춰 일제히 대대적인 시설 확충에 나설 계획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올해 키몬다와 스팬션 등 주요 업체들이 파산을 신청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일본과 대만 업체들이 투자를 크게 늘릴 태세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 D램 업체인 엘피다는 최근 히로시마에 있는 D램 생산 공장에 2011년 3월 말까지 600억엔(7천700억)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애초 계획했던 400억엔보다 많이 늘어난 것으로, 엘피다는 이번 투자를 통해 현재 80%를 차지하는 65나노 공정 설비를 대폭 줄이고, 45나노 공정 설비를 전체의 60%까지 늘릴 방침이다.
낸드플래시 2위 업체인 도시바는 1위인 삼성전자를 따라잡으려고 내년에만 공장 증설에 1천500억엔(1조9천300억원)을 투자해 생산능력을 40% 이상 확충할 계획이라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또 이노테라(Inotera), 렉스칩(Rexchip) 같은 대만의 D램 업체들도 내년도 투자를 늘릴 예정이다.
세계 반도체업계가 앞다퉈 증설경쟁에 나서는 것은 내년부터 시장 회복세가 뚜렷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윈도7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PC에 사용되는 D램의 수요가 많이 늘어나고, 스마트폰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낸드플래시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램익스체인지는 최근 내년도 PC 출하량 증가율을 11%에서 13%로 높여 잡으면서 내년도 하반기로 접어들면 D램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품귀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경쟁업체의 추격에도 생산력과 기술력에서 격차가 있는 점을 들어 비교적 느긋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D램 라이벌인 엘피다가 최근에서야 40나노 공정 생산을 시작했지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올 하반기 일찌감치 40나노 공정 양산에 돌입했고 내년 중에 30나노급 제품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내년도 투자액을 올해보다 38%가량 늘어난 5조5천억원으로 잡았는데, 이 중 대부분을 공정 고도화에 집중할 방침이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보다는 수익성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하이닉스도 내년에 해외법인 분을 포함해 총 2조3천억원의 시설투자를 집행해 D램, 낸드플래시 등 주력 제품의 공정 고도화와 생산력 확충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대규모 증산을 추진 중인 일본과 대만 업체들의 저가 출하가 본격화되면 우리 업체들이 또 다시 피 말리는 치킨게임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주경제=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