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날개 없는 추락'에 환율 1100원대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금융위기가 끝나고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수출기업들은 환율 급락이라는 복병에 울상을 짓고 있다.
17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일 대비 6.5원 하락한 1204.8원으로 마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하반기 환율이 1100원대 초반까지 진입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기회복과 함께 증시 강세로 달러가 급락하고 이는 다시 달러 캐리트레이드로 이어지면서 달러 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연쇄작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캐리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곳에서 자금을 마련해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투자 행태를 뜻한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사실상 제로 수준을 지속하면서 과거 엔 캐리로 대표됐던 캐리트레이드의 대상으로 달러가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임지원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초저금리가 다른 나라보다 오래 갈 수도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달러 캐리트레이드가 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연말 환율은 대체로 1150~1180원대.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약화되면서 환율은 추가 하락할 것"이라면서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내 1100원대 진입은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이상원 메리츠종금 팀장은 "1200원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면서 "문제는 어디까지 가느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격적인 시각에서는 1050원까지 보고 있지만 1150원 정도 또는 1100원대 초반에서 환율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현정 씨티은행 팀장은 "주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일단 연말 1150원대로 보고 있다"면서 "무역수지가 연말에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변수"라고 지적했다.
환율 급락으로 정책 당국의 시장 개입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 외신기자클럽(SFCC) 초청 간담회에서 "시장에서 정상적인 흐름에서 이탈할 정도로 쏠림현상이 심할 때는 스무딩 오퍼레이션은 어느 나라에서건 하고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고 말해 직접 개입 의사는 없음을 밝혔다.
윤 장관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지속적인 개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박용일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이사는 "실질적으로 이미 개입은 있었다"면서 "캐리트레이드에 대한경계감으로 적극적인 개입은 없지만 당국의 개입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환율 급락으로 비상이 걸린 곳은 바로 수출업계다. 1250원대가 적정 환율로 여겨지는 수출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은 이미 상당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안 박사는 "출구전략 논란 속에 내수까지 생각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환율 하락을 감안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여전히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생각하면 환율 하락을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환율 하락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주장도 출현하고 있다. 캐리트레이드 특성상 미국 경제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밖에 없어 미국 정부가 경계하고 있는데다 하반기 우리 경제에서도 변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 무역수지나 경상수지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는 환율 급락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하반기 환율은 1170원대에서 형성될 것"이라면서 "내년에는 1200원대에서 박스권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박용일 DBS 이사는 연말 환율을 1200원대로 제시했다. 그는 "글로벌 달러의 흐름을 좇아가는 상황이지만 1200원대에서 연말 환율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예상했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