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금융위기 사태의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금융위기 여파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기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은행권의 일거수일투족이 여전히 관심거리다.
금융위기의 시발점은 부동산시장이지만 사태를 악화시킨 곳은 바로 금융기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경을 가리지 않고 은행들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위기를 키운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한 은행들이 사태 해결을 위한 협력보다는 '몸사리기'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태성 금융부 차장 |
미국에서는 엄청난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돈을 쥐고 풀지 않으면서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설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6일 연방전부가 각 금융기관들의 중소기업 융자를 대거 사들이고 보증을 확대해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융자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이를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21개 대형 은행들에 대해 중기 대출실적을 매월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은행들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정부에서는 기업 구조조정 등을 촉진시키기 위해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는 등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은행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오히려 국내 한 시중은행은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한이익상실을 거론하며 기존 대출에 대한 금리를 인상하는 등 회생을 위해 몸무림치는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은행의 기업 신용평가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B나 C 등급을 받은 건설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평가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정상적인 건설사의 공사현장도 중단되는 악순환까지 펼쳐지고 있다.
오죽하면 김종창 금융감독원 원장이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업을 평가한 은행들에 문제가 발견되면 엄중 문책할 것이라고 경고했을까.
물론 은행들의 고충도 있다. 지난 2월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이 3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중소기업 연체율이 2.67%로 2005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등 자산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마당에 무조건적인 지원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은행들이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면 무분별한 대출 행태라고 꼬집고, 수익성 확보를 위해 대출을 자제하면 금융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비난을 받는 딜레마에 빠진 것도 이해는 간다.
은행이 경영을 위해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은행이 갖는 공공기관적 성격 역시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전세계가 금융위기로 출렁이고 있는 가운데 은행과 기업이 상부상조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기다.
둘다 죽어서도 안되지만 어느 한쪽만 사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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