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사태가 해를 넘어가면서 여권의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한 비판론이 확산되고 있다.
쟁점법안 처리 문제로 촉발된 여야 대치정국에서 한나라당이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당과 청와대를 아우르는 관제탑이 제기능을 못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한나라당 지도부는 국회 파행사태가 시작된 이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반복했다.
출범 2년차를 맞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85개 중점법안의 강행처리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더니, 갑자기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란 카드를 꺼내들면서 발을 뺐다.
당초 반드시 `속도전'식으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던 미디어관련법에 대해선 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처리를 늦추는 방향으로 양보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여권이 처음부터 법안처리를 위해 일관된 전략을 세웠다고는 보기 힘든 대목이다.
더군다나 홍준표 원내대표가 야당과의 협상에서 도출한 `가(假) 합의안'은 당 최고위원회의 집중공격을 받고 사실상 좌초됐다.
의원총회에선 당의 주류인 친이계 의원들이 총대를 메고 홍 원내대표를 공격하는 등 자중지란의 모습까지 보였다. 당의 투톱인 박희태 대표와 홍 원내대표도 야당과의 협상을 놓고 입장차이를 표출할 정도였다.
당연히 `여당이 길을 잃었다'는 지적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 당 안팎에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던 당청간 소통부재 현상이 또 다시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과 박 대표의 정례회동을 비롯해 당청 실무진 등 다양한 레벨에서 긴밀한 협력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게 당청의 주장이지만, 실제 이번 사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당청간 소통부재라는 것이다.
한 초선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 지도부의 이야기와 중진 의원의 이야기가 다르고, 친이계 의원들의 이야기도 달라 실제 청와대의 의중이 무엇인지 헷갈렸다"고 말했다.
당이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이번 국회 파행사태는 여권 차원에서 추진된 중점법안 때문에 촉발된 것인만큼 청와대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이 의원은 "청와대가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면, 법안 처리 문제를 놓고 홍 원내대표와 김형오 국회의장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허송세월을 했겠느냐"고도 했다.
이에 따라 당 일각에서는 당청간 소통구조가 재정비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과 박 대표의 정례회동 외에도 당.정.청의 핵심인사들이 정기적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가 설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법안 추진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원내전략을 비롯해 대국민 여론전, 협상전에서 모두 야당에 완패했다"며 "국가적 위기를 맞아 여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만큼 모든 상황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