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은 한국경제는 글로벌 침체의 여파로 여전히 암흑을 헤매고 있지만 여기저기 희망도 어렴풋이 보이고 있다.
일부 경제 변수들은 경기의 추가하락을 막아줄 정도로 힘을 발휘하고 있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경제가 선순환 단계로 접어들어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1일 정부 부처 및 전문연구기관, 금융기관 등에 따르면 올해 한국 경제에 희망을 줄 변수로는 유가와 환율, 물가, 경상수지, 감세, 재정 조기 집행 등 5개 항목이 꼽힌다. 이들 변수는 무작정 낙관할 수는 없지만 작년에 비해 나름대로 우리 경제에 힘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부분 연구기관들이 한국 경제가 올해 하반기부터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국제유가와 환율, 물가가 안정세를 지속하고 경상수지의 흑자 기조도 굳어지면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정부가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대규모 감세와 재정 조기 집행을 올해 정책 기조로 삼고 있어 그 효과 또한 기대해볼 만 하다는게 재정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이미 전세계 실물경제로 전이된 상황인데다 예상치 못한 추가 쇼크도 발생할 수 있어 정부는 '5분 대기조' 심정으로 세계 경제 상황을 면밀히 점검, 대응책 마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유가.환율 안정될 듯
지난해 국제유가는 가파르게 널뛰기를 했다. 첫 거래일인 1월 2일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선물이 99.62달러로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더니 이후 거침없이 상승했다. 7월 11일 WTI 선물이 147.2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에는 급락을 거듭했다. 12월 들어선 3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올해 유가는 이보다는 높지만 작년보다는 낮은 수준에서 안정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게 주요 근거다.
블룸버그는 올해 유가가 60달러 선이 될 것으로 전망했고 미국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는 중동산 두바이유 기준으로 66달러 선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WTI 연 평균 가격을 51.2달러로 점쳤다. 정부가 재정운용계획에서 추정한 두바이유 전망치도 60달러 안팎이다.
편차는 있지만 지난해 평균 국제유가인 94.52달러(두바이유 기준)보다는 크게 낮다.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화는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 경제에는 긍정적 요소다.
지난해 한동안 인플레이션을 이끌던 유가가 안정되면 물가 불안도 해소되고 원유를 수입해 직접 쓰거나 가공 수출하는 산업 구조상 국제수지가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가 안정의 배경이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라는 점은 악재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수출길부터 막힌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올해 국제유가는 지금보다는 좀 더 높은 60달러 후반대에서 안정화될 것으로 본다"며 "유가의 하향 안정은 그 자체로는 물가나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을 주지만 그 배경이 글로벌 경제 위기란 점에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중동 지역의 불안한 정세도 변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 확산하면 국제유가가 급등할 수도 있다.
환율 안정 전망도 우리 경제에 청신호다. 작년 한때 1,50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올해는 1,200원대 안팎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환율의 하향 안정은 수입물가를 끌어내려 국내 소비자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환율의 하향 안정은 달러 사재기를 없애 외화 유동성 불안을 완화하면서 경제 주체들의 금융불안 우려를 해소하고 외환보유액의 감소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 "물가 우려 작년보다 덜해"
경제주체들이 물가에 대해 느끼는 부담은 올해가 작년에 비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엔 유가와 곡물 가격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데다 원.달러 환율까지 치솟으면서 물가가 한 때 작년 같은 달에 비해 6% 가까이 오를 만큼 가계를 위협했다.
특히 작년 7월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9%로 1998년 11월(6.8%) 이후 9년7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기준 작년동월대비 물가상승률은 등유 65.8%, 경유 51.2%, 휘발유 24.8%, 금반지 58.3%, 비스킷 37.5%, 돼지고기 25.4% 등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작년 연평균 물가는 전년대비 4.7% 올랐다. 이에 비해 올해 주요 경제 예측기관들의 물가전망치는 3% 내외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부가 3% 내외를 전망했고 한국은행은 3%를 제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월중 수정치를 낼 예정이지만 지난해 11월 내놓은 2009년 경제전망에서는 3.6%로 예측했다.
가장 최근에 전망치를 발표한 금융연구원은 3.1%를 제시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내 기관들에 비해서는 다소 높은 3.9%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3%라는 수치 자체가 낮지는 않지만 지난해 우리가 겪었던 고물가에 비하면 상당 부분 부담이 완화됐다는 의미다. 예측기관들은 국제 유가 및 곡물 가격이 하향 안정화된 가운데 경기도 침체돼 있어 전반적으로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농산물 가격의 경우 가격 하락에 따른 재배면적 감소 효과가 있고 공공요금은 지난해 누적된 상승 압력이 현실화될 수 있어 올해 물가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것이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많다. 자산 디플레이션이 소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연착륙 수준 정도가 적합하다는 지적이다.
◇ 경상수지 대규모 흑자 전망
외화 유동성의 향배를 좌우하는 경상수지는 작년의 적자와 달리 올해에는 대폭적인 수입 감소로 대규모 흑자를 낼 것으로 대부분의 연구기관들이 예측하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면서 경상수지가 지난해 6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올해는 이에 비해 개선된 100억달러 내외 흑자가 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신년사에서 경상수지는 수입수요 감소의 영향으로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전망에서 경상 수지가 220억 달러 흑자를 낼 것으로 봤다.
LG경제연구원은 수출 증가율이 작년 13.7%에서 올해 -7.3%, 수입증가율은 22.3%에서 -10.9%로 각각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경상수지는 수입이 급감하고 여행수지가 개선되면서 76억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경상수지가 작년 52억달러 정도 적자가 예상되지만 올해에는 유가 하락, 내수 부진으로 수입이 줄고 원화 절상과 소득 감소로 서비스 수지가 개선됨에 따라 113억달러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연구원은 수출 증가율이 작년 14.7%에서 올해 -6.9%로, 수입증가율은 22.9%에서 -13.0%로 각각 급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폭으로 감소하고 해외여행 자제 등으로 경상 수지는 195억달러의 흑자를 보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흑자 전망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연구기관의 얼굴이 펴지지 않는 것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과 수입이 모두 감소하면서 '경제 축소형 흑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수입뿐 아니라 수출마저 크게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흑자라 내심 불안하다"면서 "하지만 일단 경상수지 흑자 기조로 외화 유동성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감세로 내수 지탱..조세부담률 21%대
세계시장이 동시에 침체되면서 정부가 내놓은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 카드가 가라앉는 내수를 살려낼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올해 세입 전망은 5% 성장을 기초로 감세가 없었다면 192조6천억 원으로 봤지만 감세에 따라 작년 10월2일 당초 예산안을 낼 때 179조6천억 원, 11월3일 수정예산안에서는 177조7천억 원, 확정예산에서는 175조4천억 원으로 줄었다.
조세부담률은 감세가 없었을 경우 23.3%, 감세 조치가 대부분 반영된 당초 예산안에서는 22.1%, 추가 감세가 이뤄진 확정예산에서는 21.8%까지 낮춰졌다. 2007년 22.7%까지 치솟았다가 2006년 이후 3년만에 21%대로 떨어지게 됐다.
특히 소득세 인하로 월급여 300만 원인 근로자 가장의 근로소득세는 월 2만2천810원(42.4%) 줄어든다. 또 저소득 근로자 63만 가구에 최대 120만원을 지급하는 근로장려세제(EITC)를 시행하면서 감세가 소비 진작을 이끌지 주목된다.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도 세율 인하는 물론 다양한 감면조치를 도입해 부동산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와, 6월까지 승용차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깎아주면서 세계적으로 대표 위기업종으로 떠오른 자동차산업에 활로를 터줄지도 관심거리다.
◇ 재정으로 경제에 피가 돌게..
정부는 올해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뒤부터는 재정의 조기집행에 총력을 기울였다.
주요사업비를 상반기에 역대 최고인 60%까지 집행하고 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일자리창출예산은 70%까지 집행한다는 계획을 잡아놓았다.
회계연도 개시전에도 11조7천억원 규모의 예산을 미리 배정해 올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라금고에서 돈이 나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했다.
정부가 어수선하고 바쁜 와중에도 이처럼 재정조기집행에 신경을 쓰는 것은 우리 경제가 가만히 놔두어서는 꼼짝도 안할만큼 최악의 경색국면에 와 있기 때문이다.
매출감소와 소득저하, 소비.투자감소, 재고증가, 생산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정부가 집행하는 돈으로 선순환 구조로 돌려보겠다는 뜻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오랜기간 재정적자에 시달려온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편이기 때문에 이런 정책도 큰 부담없이 펼 수 있다.
상반기 집행되는 주요사업비만 봐도 올해는 144조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집행된 109조원에 비해 35조원, 32.1%나 늘어난다.
이 같은 방침이 단순히 계획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실천계획도 꼼꼼히 세웠다.
각종 공모사업은 계획수립과 공고, 신청접수 평가 등을 앞당겨 착수하고 SOC 사업은 설계서 보완이나 계약서 작성 등 미리 할 수 있는 것은 서둘러 해놓도록 했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조기집행이 청년.여성.고령자 등 서민.취약계층의 생활안정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내수기반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