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구제금융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24일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표준협회 최고경영자 조찬회에서 '대외경제 여건 변화와 우리의 대응방안'이란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은 견해를 내비쳤다.
현 원장은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거의 무너진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을 했다. 원론적으로 정부가 이같은 조치를 한다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거의 최종 단계에 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998년 IMF 사태를 회상하면 한국 정부는 자산관리공사를 만들어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미국으로서도 정리회사를 만들어 정부 돈을 투입한 뒤 부실채권을 바꿔줄 수 있는 수단을 만들었으니 정부 조치로는 거의 다 강구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 원장은 미국의 경우 부실 규모를 다 파악하지 못한 채 구제금융책을 먼저 내놓아 향후 문제점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개 정부가 마지막에 구제금융 수단을 내놓으려면 부실 규모가 드러나야 하는데 미국의 경우 여러 곳에서 부실이 터지니깐 일단 정리, 파산하는 제도는 먼저 만들었으며 7천억달러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투자은행, 보험, 금융 등에서 터져 나올 부실 채권이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현 원장은 "대부분의 전문가가 올해나 내년까지는 세계 경기가 하강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한국은 수출의 절반이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 몰려있어 이곳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선진국보다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유가는 현재 상황에서는 적어도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세 자리 숫자의 유가를 감안해 경영전략을 짜는 게 현명하다. 달러당 환율은 선진국의 정책 당국자들도 통제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우리 또한 일정 수준으로 묶을 수 있는게 아니라 언제든 오르고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고 말했다.
현 원장은 "결과적으로 수출 금액보다 두배 또는 세배나 돈을 물어줘야 하는 키코 계약을 한 것은 제조업체로서는 상당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는 헤지펀드가 할 일이고 기업이 할 일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이 금융위기에 쏠림현상이 심한 이유는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서 바로 현금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을 소유하거나 경영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하는 비율이 적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 원장은 한국 경제 또한 당분간 하강 국면을 대비하면서 생산성 제고에 힘을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
그는 "생산과 재고 순환으로 한국 경제 상황을 보면 높은 수준의 재고 증가세가 유지되는 가운데 생산증가세가 둔화되는 등 경기 하강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2008년과 2009년이 국내 경제 사이클을 볼 때도 하강 국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 원장은 "한국으로서는 생산성 향상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경제는 기대심리가 있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이 성장 잠재력을 향상시키는데 힘쓰면 외국인 투자도 몰리게된다"면서 "미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이 IMF 사태와 같이 지급 불능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지향할 산업 발전 전략은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을 첨단화하고 IT 등 신산업으로 기존의 경쟁 우위를 지속해야하며 선진 서비스산업의 고도화를 조속히 추진해야한다. 정부가 일일이 나서서 신성장 산업을 지정하는 방식은 장점도 있지만 리스크도 있다. 어디까지 정부의 역할은 기초적인 연구개발을 해주는 것이고 어느 산업이 성공하고 성장하는 것은 기업에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