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3개월래 최저치로 하락하는 등 글로벌 상품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부터 파죽지세 행진을 이어가며 전세계에 인플레이션 먹구름을 드리운 상품가격의 고공행진이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상품가격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신호는 전방위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천연가스와 코코아, 설탕 등 19개 주요 상품으로 구성된 로이터/제프리스 CRB지수는 3.4% 하락한 401.98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3월 이후 최대 낙폭으로 지수 역시 3월초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번달 들어서만 CRB지수의 하락폭은 10%에 달한다. 월 기준으로 CRB지수의 낙폭은 1980년 이후 28년래 최대폭이다.
최근 1년간 CRB지수 추이 <출처: 블룸버그> |
전문가들은 미국경제의 침체 정도가 깊어지고 회복 시기가 늦춰질 수 밖에 없다면서 상품시장의 조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헌팅턴 애셋 어드바이저의 피터 소렌티노 매니저는 "그동안 상품시장의 급등은 투기세력의 영향이 컸다"면서 "앞으로 상품가격의 상승도 선택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품목별로 이날 최대 낙폭의 주인공은 코코아다. ICE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코코아 가격은 9.5% 하락하며 t당 2712다러로 떨어졌다.
천연가스 역시 8%가 넘게 하락하며 BTU당 8.616달러까지 하락했고 설탕은 파운드당 6.5% 빠졌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9월물 가격은 장중 4%가 넘게 하락하면서 지난 5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20달러 밑으로 하락하기도 했다.
특히 유가가 상품시장의 하락을 주도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RJO 퓨처스의 헥터 갤빈 투자전략가는 "유가가 상품가격의 약세를 이끌 것"이라면서 "사람들은 버려진 배에 마지막으로 남기를 원치 않는다"고 최근 시장 상황을 비유했다.
상품시장이 급락세로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세계 경제의 기관차'라고 불리는 미국 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말부터 미국 경제가 실질적인 침체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으며 회복 시기 역시 연내에는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시아의 용'에서 세계 경제의 주축으로 거듭난 중국의 제조업 역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경기가 위축되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상품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렌티노 매니저는 "글로벌 성장 둔화는 상품 가격의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면서 "앞으로 상품 투자에 더욱 신중해져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상품가격의 상승폭이 지나치게 컸다는 사실도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올 상반기 CRB지수의 상승폭은 29%에 달한다. 이는 35년래 최대폭이다.
<사진셜명: 4일(현지시간) 유가는 3개월래 최저치로 하락했다> |
일각에서는 상품시장이 본격적인 조정에 진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오스카 그러스 앤 선의 마이클 아론스타인 최고투자전략가(CIO)는 "상품이 장기적인 약세장이 들어섰다"면서 "지난 7년간의 랠리 이후 조정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식시장에서 상품시장의 조정으로 상품 관련주의 움직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상품 가격 하락으로 세계 최대 광산업체 BHP빌리튼을 비롯해 세계 최대 금속 채굴업체 앵글로 플래티넘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유가를 비롯한 상품가격이 하락하면서 139개 상품 관련 기업으로 구성된 블룸버그 월드 광산 지수는 이번 달 들어 10% 이상 하락한 상태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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