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언제까지 (빅테크에) 의존할 수는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8일(현지시간) CES 2025 기자간담회를 통해 SK그룹이 인공지능(AI)과 AI 데이터센터(DC)에 집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SK그룹 차원에서 올해 AI 관련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게 최 회장의 구상이다. AI용 반도체의 경우 SK하이닉스가 세계 최고 수준 경쟁력을 갖춘 만큼 앞으로는 AI DC 사업을 중점 추진 과제로 삼을 방침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증국 내 사업을 위한 방안도 함께 찾는다.
최 회장은 "AI는 좋든 싫든 한국이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며, 이를 쫓아가지 못하면 반도체, 조선, 철강 등 모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빅테크처럼 스스로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지는 못해도 이를 기반으로 하는 특수한 API(컴퓨터 간 연결)나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그룹이 전개하는 AI DC 사업은 단순히 AI 서버를 갖춘 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서 관련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발열이나 에너지 효율 등 AI DC 산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SK엔무브 등 SK 계열사가 보유한 모든 역량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결집한다. AI DC 에너지 확보를 위해 SMR(소형모듈원전)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 테라파워에도 대규모 투자를 했다.
최 회장은 "AI DC는 SK가 가진 포트폴리오와 많은 부분이 매칭된다"며 "AI DC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해 SK이노베이션 등 에너지 계열사의 역할도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신성장동력인 유리기판(Glass Substrate)에도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날 최 회장은 SK그룹 부스를 둘러보던 중 SKC의 자회사인 앱솔릭스가 만든 유리기판을 들고 난 뒤 "방금 팔고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 회장이 어떤 기업에 앱솔릭스의 유리기판을 판매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날 오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한 점을 고려하면 엔비디아에 유리기판을 공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 공급에 대한 기대감에 SKC의 주가는 이날 20%가량 급상승했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기판(PCB)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받는 꿈의 반도체 소재다. 유리기판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처리장치·메모리 등 성질이 다른 2개 이상의 반도체를 하나의 칩으로 합치는 반도체 패키징 과정에서 중간 기판인 '실리콘 인터포저'를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 배출도 PCB보다 우수해 미세공정의 한계에 부딪힌 반도체 성능(집적도)을 올리는 데에도 적합하다.
이러한 이유로 대만 TSMC의 반도체 패키징 공정인 '코워스(CoWoS)'의 생산능력 한계로 자사 AI·모바일 칩 생산량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엔비디아와 애플이 유리기판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앱솔릭스가 올해 양산하는 유리기판은 이미 완판됐고, 글로벌 대형 팹리스(반도체 설계사)와 하이퍼스케일(초대형) 서버 업체로부터 관련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