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32년, 강대국 초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초나라 성왕은 진(晉)문공이 가벼이 볼 상대가 아님을 의식하여 교전을 주저했으나 대장군 성득신이 나서서 승리를 장담했다. 성왕이 마지못해 그에게 적은 수의 군사를 붙여주었다. 전투는 진나라의 대승으로 끝났다. '성복대전(城濮之戰)'으로 불리는 이 전투의 승리로 진문공은 제(齊)환공에 이어 춘추시대 두 번째 패주(霸主)로 등극했다.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진문공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신하들이 까닭을 묻자 문공은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성득신이 살아 있는데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그가 살아있는 한 세상은 편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후 성득신이 성왕으로부터 패전의 책임을 추궁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문공이 이 소식을 듣고서야 “이제 나를 해칠 자가 없구나(莫予毒也)” 하고는 크게 기뻐했다. 일찌기 진문공이 초나라에 잠시 망명해 있을 때 성득신이 그를 경계하여 죽이고자 했던 트라우마도 작용했을 것이다.
<춘추좌전•희공28년>에 수록된 이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 '막여독야(莫予毒也)'는 '누구도 나를 해하지 못한다', '더는 내게 위험이 될 만한 자는 없다'는 뜻에서 시작하여 '하고 싶은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한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인막여독(人莫予毒)'이라고도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탄핵되었다. 이로써 헌정 사상 초유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현실이 됐다. 동시에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라는, 기네스북 등재를 노려볼 만큼 읽기도 쓰기도 숨가쁘게 긴 직함이 탄생했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호를 이끄는 선장의 직함이 초현실적으로 길다 보니 소싯적에 접한 우화가 자꾸 떠오른다.
아이 이름을 길게 지었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하마터면 아이가 익사할 뻔했다는 우화 말이다. 지나친 비유요 쓸데없는 기우일 것이다. 간단히 '최상목 대행'이라고 부르면 되니까. 단지 우화 속 부모야 아이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좋은 취지로 긴 이름을 지어 주었다지만, 최 대행으로 하여금 저리도 긴 직함을 갖게 한 민주당의 정략적 의도가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알 수 없기에 하는 얘기다.
해외토픽감으로 손색이 없을 이 우스꽝스러운 사태를 빚은 건 민주당의 폭력적 탄핵 남발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도 성에 안 차 이제는 대행의 대행도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탄핵을 불사하겠다면서 후임 대행이 임명될 때마다 '따박따박' 탄핵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와 여당을 겨냥한 겁박이지만 국민을 향한 겁박으로 들린다.
사실 민주당은 진작부터 자신들 성에 차지 않은 인사에 따박따박 탄핵으로 응수했다. 장관 탄핵, 검사 탄핵, 방통위원장 3연속 탄핵, 감사원장 탄핵 등 직종과 직책을 가리지 않고 묻지마 탄핵을 남발했다. 심지어 법무부장관 탄핵 사유에는 야당 대표를 째려봤다는 것도 포함시켰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민주당이 지금까지 발의한 탄핵이 무려 29건이다. 이 정도면 탄핵 중독이다. 무엇보다도 이재명 당 대표의 범죄 혐의를 수사한 검사들을 줄줄이 '보복 탄핵'하여 장기간 직무 정지시킨 건 민주당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래 전 "약 모르고 오용 말고 약 좋다고 남용 말자"는 슬로건이 있었다. 증상에 맞지 않는 약을 잘못 쓰면 병이 악화되고, 약효가 좋다고 마구 쓰다가는 약물에 중독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문구다. 마치 탄핵소추를 전가의 보도처럼 오남용하는 민주당을 두고 하는 말 같지 않은가? 탄핵이란 법적 비상 조치를, 그것도 29건이나 발의하여 나라가 건강해지기는커녕 자신들이 탄핵에 중독됐다는 소리나 듣고 있으니 말이다. 알코올 중독, 분노 중독에 탄핵 중독까지, 어쩌다 이 나라가 중독자들이 쥐락펴락하는 나라가 됐나 모르겠다.
12•3 사태 이후 봄바람이 얼굴에 가득한 이재명 대표는 사당화된 민주당을 앞세워 하고 싶은 일을 아무 거리낌없이 해치우는 모양새다. 거침없는 행보를 보노라면 이제 대한민국 그 누구도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작금의 국정 대혼란에 자신과 민주당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거늘, 그럼에도 차기 대권을 따논 당상으로 여기는 듯 폭주하고 있으니 성득신의 자결 소식을 듣고 '막여독야'라 하며 기뻐하던 진문공이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마치 무협지 주인공인 양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에 올랐다고 으스대던 이재명 아닌가.
하지만 절제하지 않는 권력에 거부감을 갖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진문공은 하고 싶다고 아무 일이나 거리낌 없이 행하지 않았다. 권력 행사를 절제했다. 재위 기간이 8년에 불과했지만, 선정을 베풀고 주변 제후국들을 잘 아우르며 짧은 기간에 부국강병을 이룬 명군으로 역사에 남았다. 나라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탄핵을 남발하며 국정을 마비시키는 행태로는 소수의 열혈 지지자 말고는 국민의 마음을 폭넓게 얻을 수 없다. 대통령 탄핵을 바라는 국민은 70%를 웃도는데 자신의 지지율이 40%에 못 미치는 이유를 이재명은 성찰해야 한다.
이재명의 전매특허인 '재판 지연 신공(神功)'을 마치 벤치마킹이라도 한듯 윤 대통령이 버티기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뒤늦게 대통령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를 빼겠다고 하는 건 윤 대통령의 지연 전술로 이재명의 사법리스크와 조기 대선과의 시간 싸움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의 발로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침대축구 배틀'이 목불인견이다. 자신에 대한 기소가 정치검찰의 창작 소설일 뿐이라면서도 재판을 늦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이재명 불가론'을 확산시킬 뿐이다. 관망하는 중도의 표심을 얻고 지지율 40%를 돌파하는 지름길은 당당하게 재판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독불침의 경지에 오른 분답게 말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진문공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신하들이 까닭을 묻자 문공은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성득신이 살아 있는데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그가 살아있는 한 세상은 편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후 성득신이 성왕으로부터 패전의 책임을 추궁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문공이 이 소식을 듣고서야 “이제 나를 해칠 자가 없구나(莫予毒也)” 하고는 크게 기뻐했다. 일찌기 진문공이 초나라에 잠시 망명해 있을 때 성득신이 그를 경계하여 죽이고자 했던 트라우마도 작용했을 것이다.
<춘추좌전•희공28년>에 수록된 이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 '막여독야(莫予毒也)'는 '누구도 나를 해하지 못한다', '더는 내게 위험이 될 만한 자는 없다'는 뜻에서 시작하여 '하고 싶은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한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인막여독(人莫予毒)'이라고도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탄핵되었다. 이로써 헌정 사상 초유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현실이 됐다. 동시에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라는, 기네스북 등재를 노려볼 만큼 읽기도 쓰기도 숨가쁘게 긴 직함이 탄생했다.
아이 이름을 길게 지었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하마터면 아이가 익사할 뻔했다는 우화 말이다. 지나친 비유요 쓸데없는 기우일 것이다. 간단히 '최상목 대행'이라고 부르면 되니까. 단지 우화 속 부모야 아이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좋은 취지로 긴 이름을 지어 주었다지만, 최 대행으로 하여금 저리도 긴 직함을 갖게 한 민주당의 정략적 의도가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알 수 없기에 하는 얘기다.
해외토픽감으로 손색이 없을 이 우스꽝스러운 사태를 빚은 건 민주당의 폭력적 탄핵 남발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도 성에 안 차 이제는 대행의 대행도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탄핵을 불사하겠다면서 후임 대행이 임명될 때마다 '따박따박' 탄핵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와 여당을 겨냥한 겁박이지만 국민을 향한 겁박으로 들린다.
사실 민주당은 진작부터 자신들 성에 차지 않은 인사에 따박따박 탄핵으로 응수했다. 장관 탄핵, 검사 탄핵, 방통위원장 3연속 탄핵, 감사원장 탄핵 등 직종과 직책을 가리지 않고 묻지마 탄핵을 남발했다. 심지어 법무부장관 탄핵 사유에는 야당 대표를 째려봤다는 것도 포함시켰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민주당이 지금까지 발의한 탄핵이 무려 29건이다. 이 정도면 탄핵 중독이다. 무엇보다도 이재명 당 대표의 범죄 혐의를 수사한 검사들을 줄줄이 '보복 탄핵'하여 장기간 직무 정지시킨 건 민주당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래 전 "약 모르고 오용 말고 약 좋다고 남용 말자"는 슬로건이 있었다. 증상에 맞지 않는 약을 잘못 쓰면 병이 악화되고, 약효가 좋다고 마구 쓰다가는 약물에 중독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문구다. 마치 탄핵소추를 전가의 보도처럼 오남용하는 민주당을 두고 하는 말 같지 않은가? 탄핵이란 법적 비상 조치를, 그것도 29건이나 발의하여 나라가 건강해지기는커녕 자신들이 탄핵에 중독됐다는 소리나 듣고 있으니 말이다. 알코올 중독, 분노 중독에 탄핵 중독까지, 어쩌다 이 나라가 중독자들이 쥐락펴락하는 나라가 됐나 모르겠다.
12•3 사태 이후 봄바람이 얼굴에 가득한 이재명 대표는 사당화된 민주당을 앞세워 하고 싶은 일을 아무 거리낌없이 해치우는 모양새다. 거침없는 행보를 보노라면 이제 대한민국 그 누구도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작금의 국정 대혼란에 자신과 민주당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거늘, 그럼에도 차기 대권을 따논 당상으로 여기는 듯 폭주하고 있으니 성득신의 자결 소식을 듣고 '막여독야'라 하며 기뻐하던 진문공이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마치 무협지 주인공인 양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에 올랐다고 으스대던 이재명 아닌가.
하지만 절제하지 않는 권력에 거부감을 갖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진문공은 하고 싶다고 아무 일이나 거리낌 없이 행하지 않았다. 권력 행사를 절제했다. 재위 기간이 8년에 불과했지만, 선정을 베풀고 주변 제후국들을 잘 아우르며 짧은 기간에 부국강병을 이룬 명군으로 역사에 남았다. 나라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탄핵을 남발하며 국정을 마비시키는 행태로는 소수의 열혈 지지자 말고는 국민의 마음을 폭넓게 얻을 수 없다. 대통령 탄핵을 바라는 국민은 70%를 웃도는데 자신의 지지율이 40%에 못 미치는 이유를 이재명은 성찰해야 한다.
이재명의 전매특허인 '재판 지연 신공(神功)'을 마치 벤치마킹이라도 한듯 윤 대통령이 버티기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뒤늦게 대통령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를 빼겠다고 하는 건 윤 대통령의 지연 전술로 이재명의 사법리스크와 조기 대선과의 시간 싸움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의 발로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침대축구 배틀'이 목불인견이다. 자신에 대한 기소가 정치검찰의 창작 소설일 뿐이라면서도 재판을 늦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이재명 불가론'을 확산시킬 뿐이다. 관망하는 중도의 표심을 얻고 지지율 40%를 돌파하는 지름길은 당당하게 재판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독불침의 경지에 오른 분답게 말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