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아둔했다면···

2025-0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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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왕의 지혜로운 판결
솔로몬왕의 지혜로운 판결


다 아는 얘기에 상상 더하기. 두 여인이 서로 자신의 아기라며 한 아이를 안고 솔로몬왕을 찾아왔다. 가만히 얘기를 듣던 솔로몬은 공평함을 강조하며 아이를 반씩 나눠 가지라고 판결했다. 가짜 엄마는 훌륭한 판결이라며 솔로몬을 한껏 치켜세웠다. 우쭐해진 솔로몬은 아이를 진짜 반으로 나눠 두 여인에게 나누어줬다. 진짜 엄마는 실신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솔로몬왕이 저리 아둔했다면 이 상상은 현실이 됐을 것이다. 죄 없는 아이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진짜 아이의 엄마는 남은 생을 얼마나 불행하게 솔로몬을 원망하며 살아갔을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솔로몬왕 얘기를 꺼낸 것은 때 아닌 계엄령과 그에 따른 연속적인 탄핵 정국에서 누가 가짜 엄마인지 구분해야 할 의무가 우리 국민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장면별로 누가 가짜 엄마였는지 한번 판단해보자.)

#장면 1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다. 그가 내세운 계엄령 선포의 가장 큰 이유는 '반국가세력 척결'. 그 이유가 정당했는지는 향후 수사와 법정에서 더 정확히 밝혀지겠지만, 그가 계엄을 선포한 뒤 원·달러 환율은 밤사이 2.88%나 뛰며 1442원을 터치하기도 했다.

#장면 2
대통령 탄핵안은 결국 가결됐다.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에서도 탄핵안 찬성표가 일부 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여당에서는 탄핵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배신자'로 몰며 징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탄핵 찬성을 주장한 당대표를 몰아냈으며,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른바 '친윤' 인사들로 새 지도부를 꾸렸다.

#장면 3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했다. 헌법재판관이 임명돼야 대통령이 탄핵되든 복귀되든 결정이 날 터인데,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사실상 이를 거부한 것이다. 잠잠하던 환율은 또 한번 출렁이며 1470원 선을 넘었다. 탄핵 사태 장기화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야당은 또 한번 탄핵의 칼을 꺼냈고,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최초의 기록을 남기며 직무가 정지됐다. 계엄 사태 이후 원화 가치는 갈수록 떨어져 한때 1480원을 넘어서며 국란으로 불리는 IMF 사태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선거철만 되면 보수 진영은 경제와 안보에 최우선 가치를 둔다고 유권자에게 한 표를 호소한다. 진보 진영이 어설픈 공정과 자유를 내세워 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안보에도 신경을 덜 쓴다는 게 보수 측 주장이다.

하지만 앞에 열거한 장면들에서 정말 보수가 경제와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행동들을 했는지 고개가 저어진다. 야당의 탄핵 남발에 국정이 마비돼 계엄 선포를 했다는 대통령의 주장은, 층간소음에 화가 나 위층에 불을 내지른 것과 같다는 반박에 설득력을 잃는다.

진짜 엄마라면 아이를 절반으로 나누어 가지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보수라면 아니 보수·진보를 떠나 이 나라를 걱정하는 정치인, 국정 책임자들이라면 경제가 혼란에 빠질 것을 뻔히 알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이제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솔로몬왕이 아둔했다면 죄 없는 아이는 두 동강 나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국민은 위기 때마다 늘 현명한 결정을 내렸으니, 우리 경제가 두 동강 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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