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0 총선 참패와 보수의 분열, 12·3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등이 이어지며 보수 진영을 궤멸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이 같은 위기와 보수의 실패는 정치적 전략 부재, 정책 방향의 혼선, 민심 괴리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먼저, 보수 진영의 정책적 한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서울시민에게 돌아간 실질적인 혜택은 미미했다. 유권자들은 오 시장에게 기대를 갖고 표를 주었으나 이에 대한 보상은 기대에 못 미쳤다. 만약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장에 당선됐다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선심성 예산 집행으로 소상공인과 서민의 경제적 여건을 개선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유권자들에게 체감 효과를 제공하며 정치적 지지를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보수는 이런 ‘쇼잉(Showing)’, 즉 가시적인 정책 성과를 통해 민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
특히 서민을 위한 정책적 쇼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서민층은 보수 정당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보수 진영은 경제성장이나 대외 정책과 같은 거시적 이슈에 집중하기보다는 유권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우선했어야 했다. 만약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쇼잉 정책이 제대로 추진됐더라면 지난 총선의 참패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수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보여주는 일시적인 유권자 친화적 행보 역시 문제다. 선거 기간에는 유권자와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시민과 관계는 단절되고 정치인들은 다시 과거의 엘리트적 태도로 회귀한다. 이런 태도는 유권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며 결국 보수 진영에 대한 신뢰 약화를 초래했다. 유권자와 지속적인 소통과 관계 구축이 부족한 점은 보수 진영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보수의 실패는 단순히 개인이나 특정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의 분열과 혼란은 유권자에게 지속적인 피로감을 안겨줬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는 내부적으로 재정비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정책 방향성과 지도력을 상실했다. 윤석열 집권 이후에도 보수는 유권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며 헛발질만 해댔다. 이는 결국 보수가 민심을 잃고 궤멸로 치닫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보수가 재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유권자와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선거철에만 반짝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가시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을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 서민·중산층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지원, 주거 문제 해결, 교육 기회 확대 등 정책은 보수가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 정책 같은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부 결속력 강화도 중요하다. 보수 진영 내 분열과 갈등은 신뢰를 갉아먹는 주요 요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윤석열과 이준석의 분열, 윤석열과 한동훈 간 갈등은 보수 진영 지지율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현재 상황을 방치한다면 보수는 더 이상 정치적 재기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보수는 과거의 실패를 냉정히 되짚어보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