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미증유의 초변화와 초불확실성에 따른 불안감이 증폭된 한 해였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지난해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세계는 이른바 ‘대전환 시대’가 가속될 전망이다. AI(인공지능)를 위시한 디지털 기술이 디지털·AI 대전환을 촉발하고, 기후위기가 그린 대전환을, 세대 및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신냉전 시대가 문명 및 사회 대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세상이 총체적으로 바뀌는 대전환 시대에 대응하려면 관점을 바꿔야 한다. 관점이 바뀌어야 기준과 인식이 바뀌고 목표와 전략이 바뀐다. 관점을 바꿔야 생존도 가능하고 발전도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앞이 예측 가능한 직선 도로였다면 이제부터는 예측하기 어려운 곡선 도로다. 포뮬러 원과 같은 자동차 경주에서 직선 도로에서는 모두 전속력으로 가기에 순위가 바뀌기 어렵다. 순위는 곡선 도로에서 바뀐다. 너무 빨리 가면 탈선하거나 전복되고, 너무 안전하게 천천히 돌면 추월당한다. 직선 도로의 선두 주자들도 곡선 도로에 접어들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낙오되기 십상이어서 후발 주자에게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직선 도로의 관점을 곡선 도로의 관점으로 바꿔야 자동차 경주의 승자가 될 수 있듯이 대한민국호가 대전환 시대에 승자가 되려면 관점의 전환이 시급하다.
둘째로, 대전환 시대의 촉발점이자 작금의 기술패권 시대의 성공요소인 기술 혁신에 대한 관점을 기술 자체에서 기술 혁신의 목적으로 바꿔야 한다. 즉, 기술을 위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기술 혁신이어야 한다.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기술 혁신의 목적이 기술 자체에 있었던 경향이 많았다. 기술 혁신은 환경 및 사회, 궁극적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 및 미션 중심 기술 혁신은 세계적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EU(유럽연합)가 탄소중립, 플라스틱 없는 해양, 치매 부담 반감 등을 R&D(연구개발)의 목적 및 미션으로 설정한 것이 좋은 예다. 우리 정부 및 기업 R&D 전략도 그간 대체로 기술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나 향후 세계적 트렌드에 발맞추어 인류의 지속 가능성 관점에 기반을 둔 목적 및 미션 중심의 R&D를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이 체감하기 어려운 연구개발자 중심 R&D에서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국민 체감형 R&D로 전환이 가능해지면서 정부 R&D 정책의 오랜 과제가 해결될 수 있다.
셋째로, 우리 성장 전략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를 만든 국가 성장 전략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이제 선진국으로 진입하며 과거 성공 요소였던 생산성과 효율성이 약화됨에 따라 성장 전략의 관점은 혁신성 및 전략적 방향성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만의 새로운 혁신을 기반으로 한 ‘선도자(First Mover)’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해졌다. ‘선도자’ 전략이 성공하려면 ‘초격차 기술’로 불리는 기술적 수월성도 중요하나 이것만으로는 어렵고 세계인에게 환경·사회·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 및 해법을 제시하고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빠른 추격자’ 시대의 기술 및 제품 중심 관점에서 인류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선도자’ 시대의 목적 및 미션 중심의 관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미국 농기계 회사 존 디어가 작년 CES에서 자율주행 트랙터 등 농업 테크혁명으로 기후위기와 함께 필연적으로 닥칠 식량 위기에서 인류를 구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여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이 좋은 예다. 대한민국이 ‘선도자’ 국가가 되려면 인류 사회의 목적 및 미션에 부합하는 새로운 미래 혁신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 인문 사회, 문화·예술 분야 등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다.
넷째로, 업의 정의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물론 해외 기업들도 대부분 기술 및 제품 중심으로 업을 정의해왔다. 최근 지속 가능성이 목적 및 미션으로 부상하면서 세계적 기업들부터 업의 정의를 목적 및 미션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기존 화장품 제조 및 판매 기업에서 세계인을 아름답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기업으로 업을 재정의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도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고객의 가치를 올려주는 기업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인류의 목적 및 미션 중심으로 업을 재정의함으로써 국내외 고객 등 이해관계자에 대한 우리 기업 위상 제고, 직원 사기 앙양, 사업기회 확대 등은 물론 ‘선도자’ 전략을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로, 새로운 가치 기준으로 부상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관점도 의무적 관점에서 기회적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 ESG를 환경 보호, 시회 공헌, 윤리 경영으로 보는 수동적 관점에서 환경 및 사회, 인류의 지속 가능성 경영으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성장·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능동적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 미·중 패권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신냉전 시대가 심화되고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파리협약 탈퇴 등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서 급선회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어 ESG에 대한 추진 동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ESG는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환경 및 사회, 인류의 지속 가능성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부침을 거듭하면서 중장기적 대세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되어 우리 기업의 선제적 대응이 시급하다.
여섯째로, 대전환 시대의 핵심 기술로 부상한 AI에 대한 관점 전환이 중요하다. 환경, 사회, 인류의 지속 가능성 확보가 목적이라면 디지털 및 AI 대전환은 수단이다. 이제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쓰는 사람이 못 쓰는 사람을 대체한다는 것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 개인은 물론 기업과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첨예한 AI 분야의 글로벌 경쟁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AI 기술 개발도 필요하나 AI 활용, 즉 AI 대전환(AX)이 더 중요하고 실용적이라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현실적 관점 전환으로 AI 기술에서는 후발 주자로서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선도국을 따라잡고 AX 분야, 특히 산업 AX 분야에서는 ‘선도자’ 전략으로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산업 AX 분야의 성공 요소가 AI 기술만이 아니라 산업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가 더욱 중요하기에 우리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
대전환 시대는 기회와 위협이 공존하는 위기의 시대다.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 대한민국이 대전환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관점을 바꿔 세계를 선도하는 강국으로 도약하길 기원한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