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군인의 진입을 시민들이 온몸으로 막아내고 담장 넘어 들어간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 요구를 결의하면서 비상계엄령은 일단 차단되었다. 여당의 노골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탄핵 소추안은 어렵게 가결되었다. 비상계엄령에서 탄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생중계한 외신들은 ‘K민주주의’의 평화적 창의성과 회복력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심의과정이 진행될 2, 3개월 동안 극우세력이 경제와 민생의 안정을 위협하면서 반전을 노리는 것이 불안요소이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윤석열 현상’은 극우세력의 문제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호언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받게 된 인물을 퇴직과 동시에 정계입문시켜 정권을 탈환한 보수의 무모함이 빚은 참극이다. 윤석열정권은 첫째, 취임과 동시에 전임 정부를 비난에 주력함으로써 자기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음은 물론 공허한 ’자유‘의 가치로 국민을 기만했다. 둘째, 박정희를 넘어 이승만을 ’재평가‘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국민을 우매화하려는 역사의식을 보여주었다. 셋째,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성이 아니라 외세의존성을 강화했다. ‘한미동맹’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부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끌어들여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려는 미국과 일본에 절대 추종하고 ‘아낌없는 퍼주기’로 시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고 분노 게이지를 높였다. 넷째, 북한과의 긴장을 부추기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전쟁을 유도하는 도발까지 자행했다. 탄핵은 내란뿐만 아니라 한반도전쟁도 막은 셈이다. 다섯째. 사회경제정책에서 보여준 퇴행성은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고 한국경제의 위기증후를 심화시켰다. ‘윤석열 실험’을 마친 지금 박근혜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극우세력을 분명 과잉대표하면서 극우 지역정당으로 더욱 경화된 ‘국민의 힘’의 헤쳐 모여만이 보수가 정치적으로 갱생할 길로 보인다. 시민 분노의 유효기간이 “1년”이라는 윤상현 의원의 폭언에 대한 심판은 유권자의 몫으로 남았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보이는 행보는 마치 ‘비상계엄과 탄핵이 없었던‘ 것 같은 모습이다. 국회가 재차 통과시킨 양곡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탄핵수사 진전상황과 헌법재판소의 동태를 보면서 대행의 행보를 맞추려는 의향으로 보인다. 작금의 환율 불안은 한국경제의 경쟁력 불안을 반영할 뿐이며 대증요법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매우 심각한 오류는 내란 이전부터 경제정책이 보여준 ‘대한민국 곳간 비우기’이다. 공공기관의 보유 부동산 매각, 외화반출 자유화 확대, 환율안정을 위한 국민연금 동원 등이 그것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보유한 외화자산을 환율안정에 동원함으로써 발생하는 조 단위의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통화스왑’으로 포장하는 것은 세수추계 오류와는 질적으로 상이한 ‘양두구육’이다. '친위쿠테타'가 성공했더라면 기재부의 ‘유연한 국정농단’이 더욱 심화되었을 것임은 포고령에 드러나 있다. 시민저항에 의한 내란의 실패는 윤석열표 정책의 중단과 노선변경에 대한 요구로 해석되어야 한다. 변경의 핵심은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심화시키는 정책에서 그것을 생산적으로 완화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경제부총리의 비상계엄 반대 입장으로 정책오류에 대한 책임마저 면제될 수는 없을 것이다.
헌정질서의 회복과 확립은 내란세력의 처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향후 헌정질서 문란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광범한 사회적 합의와 그 실행이 필요하다. 첫째, 국기기관과 그 종사자들 사이에서 법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윤석열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국회를 우회하는 ‘시행령 정치’를 선언했다. 다수 야당의 입법에 대한 25차례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22 차례에 걸친 야당의 탄핵소추를 불러들였다. 둘째, 피해자 중심주의의 확립이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취임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가해자 중심주의’를 급기야 ‘피해자 책임주의’로 더욱 추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 수장(水葬)’이 박근혜정부 추락의 시작이었듯이 ‘이태원 압사(壓死)’는 윤석열정부 추락의 시발점이었다. 셋째, 고위공직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책임자가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참사는 물론 쿠테타도 재발이 예정되어 있다. 5·18 군사반란에서 발포명령자 규명의 실패와 조기 사면은 10여명의 반란 동조자가 현충원에 묻히는 참사로 이어져 군부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었고 결국 작금의 12·3 친위쿠테타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수사나 재판 중인 공직자는 불법행위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즉각 직무에서 배제되어 유죄확정시 정상퇴직 상태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넷째, 국방의 문민화를 조속히 달성해야 한다. 이와 병행해서 군의 정치적 중립이 엄정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 현역 군인이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망국적 현상과 군의 능동적인 내란 참여는 서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헌법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헌법을 학교교육에도 도입하고 경제활동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불러들여 모든 시민의 법의식을 높임으로써 국정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시민감시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마을도서관을 폐쇄하고 장애어린이 지원금을 삭감하는 것이 헌법 제34조 “국가의 복지 증진 의무”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헌법 제33조에 규정된 “노동3권”이 헌법적 토대도 없는 ‘경영권’에 의해 심각하게 제약당하는 현실이 합헌적인지, 국내기업의 해외 공장건설을 지원하는 정부정책이 헌법 제32조 국가의 “고용증진 의무” 및 제119조의 “경제성장 목표”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등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친일, 반공, 독재의 삼위일체가 윤석열 정부의 실체였다. 이들 삼위일체 세력은 동시에 대한민국 극우 기득권 세력의 실체이기도 하다. 결국 친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을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도 서슴치 않았다.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만이 아니라 그것에 동조하는 국내 집단은 적어도 공직자로서 부적합하다는 공감대가 법제화될 필요가 있다.
내란수괴의 탄핵과 처벌로 불법 계엄과 내란에 대한 조치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준엄한 사법처벌이 이루어져야겠지만 곧바로 허울 좋은 ‘국민통합’의 미명하에 사면복권이 ‘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지고 공범들에 대한 처벌이 흐지부지된다면 후속 쿠테타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계엄에 맨몸으로 저항하고 평화적이면서 강력하게 탄핵을 외치는 ‘K민주주의’가 또 다시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자칫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탄핵뿐만 아니라 탄핵심판 이후의 과제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