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재청구 시점을 둘러싼 언론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 중이던 필자도 하루종일 특검 수사팀의 동태를 살피다 별 수확 없이 퇴근할 판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식히려 기자실을 벗어나 바깥 바람을 쐬려던 찰나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과 마주쳤다.
주위는 둘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조우였지만 반사적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는 언제 이뤄질지, 보강 수사에 진전은 있었는지, 혐의가 추가됐는지 등. 윤석열 팀장은 특유의 말머리 "그 뭐···"로 운을 뗀 뒤 지금 영장 들려 법원으로 보내고 퇴근하는 길이며 발부를 자신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기자실로 뛰어 올라가며 후배에게 사실을 전했다. '특검, 이재용 구속영장 재청구' 제하 기사에 삼성은 물론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재용 부회장은 영어의 몸이 됐고 삼성은 경영 승계를 위해 최순실에게 뇌물을 건넨 부도덕한 기업 이미지를 뒤집어썼다.
회장으로 승진한 지금까지도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조만간 항소심 판결이 나온다. 검찰의 구형량은 징역 5년이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은 해체됐다. 삼성을 상징하던 신속한 의사 결정과 공격적인 투자도 실종됐다. 작금의 삼성 위기가 여기서부터 기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을 비롯해 특검이 휘두른 칼날에 상처를 입은 기업과 용케 피한 기업 간 명운이 갈린 사례가 많다. 바뀐 정권에서 국정농단 연루설로 곤욕을 치른 기업도 있다. 촉망받던 엘리트 관료 중 상당 수 커리어가 단절됐다. 기획재정부 내에서 '천재'로 불리던 한 관료는 청와대 재직 시절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고 기업인에게 말을 전했다는 이유로 수감됐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의 기재를 아쉬워한다.
이 모든 풍파가 지나는 동안 윤석열 검사만 국민적 스타가 됐다. 그렇게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을 거쳐 국민의힘 후보로 대선에 승리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지위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감옥으로 보낸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국정농단 관련자들이 이 정부 들어 특별사면·복권 조치로 사회에 복귀했다.
특검 수사팀장 시절 그의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종종 엿보았다. 앗아간 삼성의 기회, 법적 책임에 주눅든 공직사회, 더 첨예해진 진영 갈등 등을 제물 삼아 오른 대통령 자리라면 선정을 펼치며 국민 화합을 이루는 데 진력했어야 옳았을 터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취임 첫해 터진 비극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냉담함에서 기미를 보이더니 올해여름 '채 해병 순직 사건'에 이르기까지 애민(愛民)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배우자 비리 의혹에 대한 옹호로 드러낸 불공정과 비상식, '의료 대란'으로 대표되는 실정(失政) 릴레이. 스스로 대통령 자격을 깎아먹은 2년 반이었다.
급기야 12월 3일 밤 위헌·불법적 비상계엄을 실행에 옮기며 국회의 탄핵 소추 가결을 강요했다. 그의 폭주에 또다시 수많은 관료들이 면직과 수감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경제 리더십과 대미 협상력 실종 속에 더 많은 기업인들은 각자도생의 정글로 내몰렸다. 반세기 가까이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국격과 신인도 역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위기다. 그 탄핵 때 그가 그 자리에 없어 국민 영웅이 되지 않았다면. 무의미한 잡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