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재등장에 무수히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어떻게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귀환할 수 있나? 반민주적 인물을 다시 선택한 미국민을 원망이라도 하듯이, 민주주의 제도가 정말 인류의 삶과 가치 실현에 적절한지 묻는다.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현실적인 질문이 터져 나온다. 미·중 대결이 심화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아니면 김정은과 관계 복원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 열릴까?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갈 트럼프를 심히 경계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통상 압력이 우리 경제에 어떤 파장을 낳을까?
312명 vs 226명.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트럼프의 압승이다. 그런데 이런 격차가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자 또다시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과 무용론이 제기된다. 여기서 언론의 태도와 역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우리에게 익숙한 주요 매체들이 트럼프 지지 여론을 정확하게 전달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뉴스를 전달했다기보다 자신들의 관점에서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는 오랜 관행에 젖어 있었다. 그 속에는 계급적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있었다. 이제 그 계급이 적어도 서민 대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보다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이런 맥락을 간파한 트럼프는 비판적인 주요 매체들과 싸우기보다 우회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는 이슈 토론을 통해 도덕성과 전문성을 검증받는 대선 후보 토론회를 거부했다. 단 한 차례 출연한 ABC 주관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그는 여전히 비호감 후보임을 여실히 드러낼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후보자 토론회를 대신할 코미디·토크 팟캐스트가 있었다. 자신의 견해에 공감하는 진행자와 몇 시간 동안 대화하는 방식은 평소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으로 판명되었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점점 더 확산하는 뉴스 소비자의 확증편향 현상은 이제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출현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는 뉴미디어로 대중과 소통하는 승자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8년 전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샤이 트럼프’ 층이 주목을 받았다. 각종 추문과 비리, 심지어 범죄와 연루된 의혹이 제기된 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냐는 힐난이 담긴 질문이었다. 하지만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없듯이, 정치인이 유권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적응할 뿐이다. 그래서 정치의 수준은 유권자의 민도와 비례한다는 경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후보는 어떻게 저렇게 정직하지도 깨끗하지 않은 후보에게 질 수 있는가? “10월에 필자는 우연히 워싱턴D.C.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지인과 월가에서 대규모 자산을 관리하는 지인을 각각 만났는데, 두 사람 모두 트럼프의 승리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었다.” 어느 신문의 한 대목에서 잘 드러나듯 선거는 치러지기도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 러스트 벨트(미국 중서부의 낙후된 공업 지대)의 백인 하층 노동자들과 선 벨트(미국 남부의 뜨거운 지대)의 보수적인 주민들로 구성된 트럼프 핵심 지지층의 지지가 얼마나 단단한지 실감나는 대목이다.
노동자 유권자의 관점에서 선거는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기후 위기의 해결? 낙태권 보장 논쟁? 북핵 문제의 해결? 아니다. 그들은 늘어나지 않는 일자리를 두고 외국인과 경쟁해야 하는 환경에 짜증나고, 임금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한정 없이 올라 생활 수준이 하락할까 공포심에 짓눌려 있다. 그들은 거대하고 숭고한 과제의 해결보다 당장 내 삶의 개선을 기대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내일의 가치 실현보다 오늘의 생존이 시급한 이들에게 민생고를 해결할 구세주가 누구일까? 그는 당연히 현실주의적 정치가일 것이다.
이 점에서 월가의 인사들마저도 트럼프의 승산을 예견했을 것이다. “내가 집권하면 24시간 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정치적 수사로서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평화를 염원하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반면에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든 이스라엘-가자 전쟁이든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세계 평화의 주도자라는 이미지를 빼앗겨 버렸다. 그건 외교적 이미지의 문제뿐만 아니라 전쟁과 연결된 민생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결함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보기에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명분은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의 독립? 나토의 동진? 유럽의 안보위기 해결? 러시아의 고립? 그 어느 것도 현재의 지정학적 판도에 맞지 않는 질문들이다. 미궁에 빠진 전쟁에 미국 정부가 수백조원을 쏟아부어야 할 명분은 분명치 않다. 반면에 전쟁은 식량과 에너지 가격의 인상 등 세계적인 물가인상의 진앙지로서 지목될 뿐이다. 바이든의 외교정책이 노동자에게는 물가 인상의 고통을, 부자들에게는 엄청난 투자 이익을 안겨주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진보적 정체성은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해리스는 이스라엘-가자 전쟁의 종식에 관한 해법과 일정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의 반인도적이고 폭력적인 가자 지구 점령과 민간인 학살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반네타냐후 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미시간 대학에서 해리스나 민주당에 대한 지지 표지판이나 적극적인 활동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외국발 리포트는 민심과 유리된 채 가치와 평화를 떠드는 민주당을 보는 듯하다. 과연 ‘진보적’ 민주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유권자는 묻고 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의 포퓰리스트 정치가 트럼프의 재등장은 세계 정치와 경제의 판도를 심하게 흔들 개연성이 짙다. 그의 선거 구호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와 ‘미국 우선주의’에 걸맞게 고립주의를 채택하며 경제적 민족주의가 강화될 전망이다. 자유무역의 기조 아래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글로벌 경제 환경을 만들려는 신자유주의의 기치는 이제 마침내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통하여 신자유주의를 포기하고, 최근에 사회민주주의적 노선의 노동당 정부에게 힘을 실어준 사건과 맥락이 통한다. 이런 경향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뚜렷이 감지되는 극우 정치 세력의 약진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헝가리의 장기집권자 오르반 총리가 유럽연합과 각을 세우면서 러시아와 연대를 통해 자국의 경제구조를 재건하는 한편, 이탈리아의 극우 총리 멜로니가 정치적 인기를 누리며 경제 상황을 안정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대서양 양안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고립주의적 기조를 공유하면서 축소 지향의 새로운 질서를 수립할 여지가 보인다. 여기에는 당연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이 전제된다.
문제는 미·중 무역 갈등의 해법에 달려 있다. 대중 매파 인사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행보로 봐서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갈등은 격렬한 파열음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트럼프는 동북아의 정치적 긴장관계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개연성도 높다. 그는 어찌 됐든 비즈니스맨으로서 미국을 위한 재원 확보에 사활을 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비즈니스, 트럼프와 푸틴의 비즈니스, 트럼프와 시진핑의 비즈니스 등 다차원의 경제적·외교적 비즈니스가 전개되리라 본다.
이때 한국 정부의 유연한 대처가 매우 중요하다. 기존의 가치외교에 매달려 군사적 대치 상태를 조장하고 그로부터 이득을 얻어내려면 외교적인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동북아에서 전쟁을 바라는 국가는 결코 없다. 북한의 약한 고리를 둘러싸고 외교전을 펼치면서 경제적 실리에 전력을 추구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평화를 보장받고, 그에 기반하여 경제적 실리를 얻어내는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마땅하다. 어쩌면 트럼프의 비즈니스적 유연함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의외로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차원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재앙적 수준이다. 당장 인류에게 닥친 시급한 문제의 해결은 더욱 요원해졌다. 예를 들어 ‘파리의정서’를 파기한 트럼프 앞에서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는 파산 위기에 놓였다고 보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리라.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보 전진, 일보 후퇴의 교훈을 되새겨준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