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묻고싶다 …현재의 지방대, 여전히 필요한가?

2024-08-27 08:41
  • 글자크기 설정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2000년대 초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대학을 둘러싼 변화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중 하나가 지방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였다. 지방 출신 학생들이 부산대를 비롯한 그 지역 최고의 국립대학보다 서울의 중하위권 대학을 선호하는, 소위 ‘인서울 대학’ 진학 열풍이 놀랍기도 하고 석연치 않기도 했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을 넘어 대학 진학을 위한 청년의 서울 집중은 지방의 공동화를 부추기며 한국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리라 예고됐다.

그 와중에 지방대에 몸을 담게 되면서 필자는 지방대를 둘러싼 많은 문제를 체감했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안동대 부임 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던 광경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가나다순으로 쓰인 출석부 첫 페이지에 권씨 성을 지닌 학생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동과 주변 시·군 출신 학생이 절대다수를 차지했고, 일부 학생의 학력은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들 못지않게 탄탄해 지역 대학의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던 그 무렵부터 벚꽃 지는 순서대로 지방대가 소멸할 거라는, 소위 ‘벚꽃엔딩’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로 비수도권 지역 대학들의 위기론이 항간에 떠돌았다. 진보 성향의 지방대 교수들은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 주장으로 지방대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정부 역시 지역 대학의 위기를 간파하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미 2000년에 ‘지방대학 육성 대책’을 제시하며 우수 학생의 수도권 집중 현상의 심화가 지방대 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진단 아래 정부는 지방대학의 자생력 강화, 권역별 산·학·연 연계 체계 구축 및 지방대학 학생 취업 기회 확대 등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지방대의 위기는 해소되기는커녕 악화 일변도로 진행되었다. 참여정부 이래 역대 정부는 위기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positive) 정책 대신 ‘선택과 집중’, 즉 일부를 도태시켜 일부를 구제하는 소극적인(negative) 정책으로 위기 탈출에 나섰다. 강압적인 대학 정원의 감축과 대학 간 통폐합으로 대학의 개체 수와 규모 적정화 작업이 시작되며 국립 상주대, 밀양대, 여수대, 익산대, 삼척대 등 산업대에서 출발한 대학들이 대형 국립대에 통합되어 사라졌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는 구조조정과 연계된 대학평가와 재정지원사업을 펼쳐 대규모 대학 정원을 감축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당연히 지방대학의 정원 감축이 수도권 대학을 압도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방대학 살리기’ ‘지방대학 경쟁력 강화’ 구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2010년 중반 이후 지방대학 위기는 지역의 소멸과 연계되어 공멸의 위기, 나아가 국가의 위기로 확대되었다. 통폐합으로 사라진 대학이 입증했듯이, 해당 지역의 인구 감소와 경제 타격이 현실로 드러났고, 지자체가 지역 대학의 존폐를 걱정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정부는 2010년대 중반 이래 ‘지방대육성법’을 제정하고 여러 차례 개정하여 보강하였다. 이 법에 따라 교육부 장관은 5년마다 기본계획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정책을 시행하는데, 지방대학 지원책으로 해외 교류·연수 사업 등 균등한 기회 보장, 공무원 임용 기회 확대, 공공기관 등 채용 확대, 대학의 입학 기회 확대 등 내용이 법안에 담겼다.

하지만 이 법의 실효성은 의문이다. 법안의 지원책에 충실하게 따른다면 지역 인재에게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사원이 될 기회는 늘어나는 반면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책도, 기업이 제공하는 혜택도 없다. 국가권력이 사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위헌적 요소를 띠고 있다는 측면을 고려하면서도 실제로 우량 기업에 도전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기 짝이 없다. 지방에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기업이 없고 사기업은 상위권 학생을 선발하려고 한다면 지방대육성법은 한계가 뚜렷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지역 학생들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누르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지방대 학생의 시야를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취업에 가두지 않을지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갈수록 깊어지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국정과제로서 윤석열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지방대학 시대’를 표방했다. 지방대학에 관한 행정적·재정적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고, 대학과 지방정부 및 지역 기업이 연계하여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자생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에 따라 등장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는 지자체의 대학 지원 권한을 확대하고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선택과 집중에 의한 재정투자를 추진할 수 있게 했다. 지역의 사업 주체들은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계하고 예산사업의 우선순위와 사업 기간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 체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지방대학에 한정하여 세계적인 수준의 글로컬대학30 육성사업을 시행 중이다.

그런데 글로컬대학30에 들지 못한 대학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아 그들이 실제로 부실 대학으로 낙인찍혀 도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태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완비되어 있는지, 나아가 도태 위기에 처한 대학법인이 퇴출 수순을 밟을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이 도태되었을 때 해당 지역 사회의 주민과 지자체의 반발은 없을까?

이런 우려스러운 질문은 사립대의 특수한 정체성과 연계된다. 사립대가 개체 수로 보나 학생 수로 보나 대학 체제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기이한 현상은 후진국 시절 대한민국 정부가 대학을 설립할 재정이 부족하여 민간 자본에 의존한 결과였다. 특히 지역의 사립대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요람이었고, 지역 사회의 고등교육 수요를 충당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산의 동아대, 대구의 영남대, 광주의 조선대, 익산의 원광대 등 지역을 대표하는 사립대학들의 이름에 익숙하고, 그 대학들이 지닌 학풍과 강점 그리고 대표 학과들의 존재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간 국가는 부단히 사립대 설립을 독려하면서 행정적·재정적 혜택 없이 사립대를 관리와 통제 아래 두었고, 사학법인은 교육이라는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비영리재단으로서 교육 수혜자가 내는 학비에 의존하여 경영했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함께 고등교육 규모가 확대되면서 점차 사학법인은 사회적 자본과 권력을 가졌고, 자율성을 내세워 법인 운영의 특수성을 주장했다. 그 결과 사유재산으로서 사립대는 공공적 고등교육기관의 가치를 자의적으로 축소하기 일쑤였고, 국가적 관점에서 대학정책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따라서 사립대의 선택과 집중에 따른 도태는 저항에 부딪힐 여지가 많고, 실제로 교육부는 수년 전부터 한계 대학을 지정하고 퇴출을 시도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지난 20년은 대한민국 고도 경제성장의 조정기로서 대학에도 체질 개선을 위한 전환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우리의 기업 체질이 바뀌었듯, 교육당국도 1995년 ‘5·31 교육개혁’으로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런데 5·31 교육개혁을 포함하여 이후 추진되는 모든 대학 정책은 항상 양적 성장과 외형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통계적 수치 상승 예를 들어 대학평가의 서열 상승에 성패를 걸었다. 5·31 조치로 경쟁 원리가 대학교육의 영역에 적용되면서 대학의 서열이 대학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지배했고, 대학 문제는 대학입시에서 절정을 이루고 대학 자체의 질적 개선에 대한 논의는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지방대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체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작동하였다. 재원과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방치 또는 조장되는 가운데 지방대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고 서열과 평판의 추락은 학생의 수도권 이탈로 이어졌다. 지방대육성법으로 대표되는 지방대 살리기는 그래서 사실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치 재원을 수백조 원 투입하고도 인구 감소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인구 정책 실패와 매우 흡사하다.

그렇다면 지방대를 살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도토리 키재기식 평가를 통한 선택과 집중 방식이 재고되어야 한다. 사립대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자발적인 토대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최근에 다시 한번 발의된 ‘사립대학구조개선법’이 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번번이 폐기되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이제 국립대학법과 사립대학법을 제정하여 새로운 대학체제의 발판을 만들 때가 되었다. 더불어 사학법인의 건전한 대학 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준비하고 있는 ‘법인평가’의 제도화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진지하게 실행할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더불어 ‘지방대학 시대’처럼 신기루 같은 구호로 지역주민을 혹세무민하는 정치가 그쳐야 한다. 대신 국가교육위원회 주도로 향후 10~20년간 지속되는 가칭 ‘대학체제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 세대가 참여하고 사회 각 계층의 대표자들을 골고루 선임하고 성비의 균형을 갖춘 위원회 말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백년대계로서 미래 세대에 의한, 미래 세대를 위한, 미래 세대의 대학 체제를 수립하는 장도에 올라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가치와 위상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대학이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평생교육기관으로 전환할지, 취업사관학교로 재편할지, 아니면 연구기관으로 남을지, 수도권과 지방의 소재에 따라 대학의 기능을 분리할지, 궁극적으로 지방에 대학이 존재해야 하는지? 모든 질문은 열려 있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