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러시아 차르 푸틴의 침공으로 보이지만, 양국 간 극단적인 갈등과 우크라이나 내부의 극단적인 갈등의 산물이다. 소련 해체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은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체험했고, 결과는 유럽연합과 러시아 사이에서 표류하는 국론의 분열로 드러났다. 그 후 우크라이나는 집권 세력의 성향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갔고,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지정학적 분쟁 지역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분열을 나토 동맹을 확장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고, 러시아는 오랜 세월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우크라이나의 이탈을 방치할 수 없었다.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은 친서방계 주민의 우세를 보여주었으나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으로 좌절되었고 친러시아계 주민의 부분적인 독립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과정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의 나토 가입 시도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총의를 무시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그 대가는 무수한 인명의 희생이고, 식량과 에너지 가격의 치명적인 인상으로 전 세계인이 겪는 일상의 고통이다.
1년 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수천 발의 미사일을 쏘았고, 다수의 이스라엘인을 인질로 잡아갔다. 실로 충격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유발했다. 세계는 경악했고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궤멸을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보복 전쟁은 철저하고 가혹하다.
이스라엘 정부의 극단적인 보복의 이면에는 초강경 극우파 정권이 도사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있다. 1996년 역대 최연소(47세) 총리에 오른 네타냐후는 3년의 임기를 마친 후 2009년 재집권하여 12년간 권좌를 유지했다. 기본적으로 그는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에 반대하고 군사력에 기반한 안보적 해결책으로 평화를 유지하려는 우파 정치인으로서 외무장관 시절(2000~2005년)에 가자지구 철군과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 철수 계획 등 라빈 총리의 온건 정책을 비난하며 장관직을 사퇴한 바 있다.
12년 집권의 종말은 네타냐후의 부패 스캔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2016년 처음으로 뇌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되었고, 2020년 5월 금품 수수 혐의로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총리 신분으로 재판정에 섰다. 이듬해 6월 마침내 비교적 온건한 우파 성향의 야당들까지 힘을 합세하여 퇴진을 촉구하면서 네타냐후의 장기 집권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2022년 11월 그는 부활했다. 이스라엘 국민은 네타냐후에게 세 번째 집권을 허락했다. 결과적으로 위험한 선택으로 판명되었다. 그의 연정 파트너가 ‘독실한 시오니즘’,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인 샤스, 보수 유대 정치연합 토라유대주의연합을 아우르는 극우 정당 연합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의 격화, 팔레스타인 주민의 유대인 정착촌 침투와 총기 난사는 극우파 정당들이 약진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이 선거 과정에서도 이스라엘군은 테러범 색출을 명분으로 요르단강 서안 수색을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양측의 충돌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국경을 넘어 지상전을 전개하는 중이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반이스라엘 세력의 축으로 불리는 이란을 향해서는 핵시설이든 정유시설이든 가리지 않고 폭격을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대한 서방 국가의 반응은 싸늘하다. 유럽 각국에서는 반이스라엘 시위가 점점 더 폭력적인 양상을 띠고,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급기야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무기 공급 중단을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그러나 공허하게 들린다. 이스라엘 극우 집권 세력의 극단적인 방위권 앞에 전 세계 시민의 안전과 평화는 풍전등화의 위험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두 개의 전쟁을 언급하면서, 문제는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80년간 국제 정치의 근간은 전쟁 재발 방지와 평화의 추구였다. 냉전은 적어도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지켜내는 데 기여했고, 그 불안한 평화 속에서 인류는 성장과 풍요의 시기를 누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쟁이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될 수 있거나 나아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나는 추세가 느껴진다. 두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유럽 국가들이 평화 체제에서 안보 강화로 전환하는 경향을 예의 주시할 만하다.
독일 연방 하원은 1000억 유로(약 150조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 조성안을 승인하며 "믿을 수 있는 강력하고 최첨단의 혁신 군대를 만들겠다"는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나아가 독일은 현재 18만2000명인 정규군 병력을 2030년까지 20만3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런 추세는 지난 5월 발표된 영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2023년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2조2000억 달러(약 2948조원)로 전년보다 약 9% 증가하여 사상 최대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도 “지난해(2023년) 세계 149국 중 3분의 2가 넘는 69%가 전년 대비 국방비 지출을 늘리며 전체 국방비 지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 확대도 의미심장하다. 작년과 올해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2%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고, 영국과 폴란드 등은 이미 2.5% 수준으로 국방비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스웨덴·핀란드·독일 및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은 일제히 징병제 부활에 나서거나 검토하면서 병력 확보에도 나섰다.
언론 기사는 마치 유럽에 전면전의 위기가 다가오는 듯 보인다.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50년 이상의 번영과 평화가 있었다. 전쟁이 4년간 지속되고 1000만명의 희생자를 내며 유럽을 파국으로 몰아넣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린 청년들은 전쟁을 병정놀이처럼 여겼고, 기성세대는 전쟁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전쟁은 단기간에 끝나고 예전의 평화와 번영이 다시 돌아오리라 믿었지만 커다란 착각이었다. 풍요로운 성장과 위협적인 혁명 기운이 공존하던 벨 에포크 시절에 유럽인은 전쟁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잃고 전쟁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주전론자들은 ‘전쟁은 정치적 최종 수단’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비웃으며 ‘정치는 일상적인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정치를 전쟁의 일부로 대하는 인식이 바로 파시스트적 정치의 핵심이다.
이탈리아 국민이 무솔리니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정치인을 총리로 선출했고,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알려진 네덜란드에서 극우파 정부가 들어섰다. 나아가 영세 중립국을 표방한 오스트리아 국민이 나치 잔당이 조직한 정당을 제1당으로 선택했다. 아직 프랑스와 독일이 각기 중도우파 마크롱과 중도좌파 사민당의 집권으로 극우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극우파 대통령 당선이나 독일의 극우파 정당 탄생은 시간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먼 나라만의 얘기도 아니다. 극우 파시스트적 정치 인식이 우리 곁에서도 부활하고 있다. 대화를 통한 평화보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며 광화문 거리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는 광경은 공포감을 자아낸다. 무력에 의한 평화는 필연적으로 파국을 동반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인지 묻고 싶다. 전쟁을 불사하는 평화는 반국가적이고 반인륜적인 무책임한 정치 행위임을 명심하자.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