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TV 토론 이후 미 주류 언론들이 해리스의 승리를 예측하였으나 이번 대선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사실 트럼프의 승리는 바닥 민심을 잘 살펴보면 예측할 수 있었는데도 미 언론들과 기득권층들은 자신들이 원치 않는 미래를 직시하기 싫었던 것이다. 트럼프의 집권 2기는 1기와는 또 다를 것이라고 트럼프는 물론 그의 참모그룹들도 다들 공언하였기에 우리는 그의 집권 2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따져봐야 한다.
트럼프 2기는 1기 때보다 트럼프의 개인적 소신이 훨씬 강하게 미국 정책에 반영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는 1기 내각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을 많이 포진시키지 못하여 그들과 이견으로 정책 혼선을 빚기도 했다. 소위 당시에 트럼프를 억제하는 ‘어른들의 축(axis of elders)’이 있어 그의 과도한 편향성을 억제하는 데 나름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2기에서는 그런 인사들은 등용될 리가 없고 트럼프는 자신과 세계관을 같이하는 충복들로 이미 행정부를 구성할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그러니 2기 집권 기간에 미국의 대외정책은 1기 때보다 훨씬 강경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듯 더 급격히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는 미군이 해외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런 사고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 미국 공화당의 전통 사상과 맞닿아 있다. 미국 공화당의 원조인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은 외국과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고립주의를 일찌감치 표방했다. 그리고 키신저도 ‘미군이 한국에 오래 묶여 있을 필요가 없으며 주한미군은 미국 외교의 영구적 특징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이것이 미국의 건국이념인 미국 예외주의와 고립주의를 대변하는 생각이다. 미국은 이런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2차 대전까지만 해도 해외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상당히 꺼린 나라였다. 즉 미국의 기본 국가전략은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해외 분쟁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판세를 보다가 판세가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면 그때 개입하여 판세를 미국에 유리하게 돌려놓는다는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때도 영국의 애걸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반기에 겨우 참전을 결정하였다.
트럼프는 이런 미국의 기본 전략을 되살리려 하고 있고 그의 참모들도 미국이 2차 대전 후 패권국 역할을 하다 보니 너무 과도하게 해외 분쟁에 개입하였고 이것이 미국의 쇠락을 재촉하였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동맹국들이 안보는 전부 미국에 부담시키는 무임승차 행태를 보이면서 각국은 경제 발전에만 집중하여 미국의 경제를 멍들게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 트럼프 2기에서는 미국의 동맹국들은 안보 부담을 더 많이 나눠 지고 또 동맹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특히 트럼프는 닉슨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존경하며 교우를 하였는데 그가 닉슨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아시아의 방어는 아시안인의 손에’라는 닉슨 철학을 ‘트럼프 독트린’이라는 형태로 되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신행정부의 이런 성향을 알게 되면 신행정부가 펼칠 대외 정책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고 그 정책이 한국에 어떻게 적용될지도 가늠해 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다자주의와 가치외교를 기피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에 맞춰 국익 기반 실용외교를 양자 차원에서 전개해야 한다. 또한 신행정부는 동맹의 역할과 의무 이행을 강조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상 동맹의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는 미국이 관할하는 태평양 지역 영토에 대한 공격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미국을 도와 참전할 수 있는지 물을 것이다. 그 이전에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에 대해 한국이 더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라고 주문할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시원찮으면 트럼프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 의무도 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할 것이다.
또 미국이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전부 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기존의 방위분담금 협정(SMA)에 따르면 우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최대 2조원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유세기간 중 그가 한국이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방위분담금 협정 밖의 비용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는 한국이 주한미군의 인건비와 부대 운영 비용까지 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에 핵확장억제를 제공하기 위하여 미국의 전략자산인 전략폭격기, 항모전단, 핵잠수함들을 더 자주 한반도 인근에 배치하고 있다. 이런 전략자산 전개 비용은 엄청나게 비싼데 트럼프는 이것도 한국을 위한 것이므로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총액이 연간 1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비용계상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하고 우리는 검증할 수도 없이 그냥 지불해야 하므로 국내적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그러고 미군 인건비를 우리가 부담하지 않으려 하면 주한미군 2사단마저 철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신행정부는 북한과 핵협상을 다시 타결 지으려 할 수도 있다. 북한이 핵을 더 이상 고도화하지 않고 따라서 미국 안보에 더 위협이 되지 않게끔 하는 선에서 협상이 타결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은 방산에서도 미국과 경쟁할 정도로 강한 나라이므로 북한에 홀로 대응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핵무장국인 북한을 우리의 재래식 무기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전작권 전환도 별 유보 없이 우리에게 넘겨주려 할 것이다. 이러면 우리는 정말 여태까지 미국에 기대는 자세에서 벗어나 자주국방의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자연히 우리의 핵자강 필요성이 더 부각될 것이고 이를 위해 미국과 협상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경제안보 관점에서 미 신행정부는 중국과의 첨단기술 분야에서 첨예한 대결을 전개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반도체 기술이 중국에 이전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공급망도 중국을 더 분리(decoupling)시키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공고히 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비해서 우리가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을 막아 서면서 생기는 빈 공간을 우리가 메울 수 있어야 한다. 기후변화 관련 정책이 바뀌면서 우리의 자동차, 배터리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고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도 점쳐진다. 그러면 우리 기업들의 ESG 경영도 이에 맞추어 변해야 할 것이다.
미 신행정부와 협상에서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트럼프의 속내를 읽는 예리한 눈과 대담한 지략과 배짱이 필요할 것이다.
미 신행정부가 일으킬 거센 파도를 우리가 잘 타고 넘어서면 우리에게 이익이고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익사할 수도 있다. 파도를 타는 기술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데리고 온다. 그리고 기회의 신은 앞모습은 없고 뒷모습만 있다고 한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그 기회가 온 줄도 모르고 놓치고 만다. 그다음에는 위험의 신이 문을 두드릴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