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한반도 안보지형 싹 바뀌는데 … 'NPT 체제 수호' 집착하는 한국

2024-10-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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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미국 전문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도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내비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독자적 핵무장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국내에서도 점차 힘을 얻어 가고 있다.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우리가 핵무장을 시도한다면 ‘핵비확산조약(NPT) 체제’를 위반하게 되고 이에 따라 심각한 국제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NPT 체제는 1970년 출범하였으며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에 대한 인류의 공포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핵무기는 1970년 이전에 핵을 가진 5개국만 보유하고 나머지 국가들에 핵무기가 확산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 NPT의 주목적이다. 이 조약은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5개국만 핵무기를 독점하도록 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고 군사적 목적으로 핵을 연구하거나 개발할 수 없게끔 국제적인 감시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런 목적을 가진 NPT 체제를 핵자강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진심으로 지켜야 할지 의문이 든다. 출범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NPT 체제를 되돌아보면 사실 그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여러 가지 흠결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핵무기 비확산이란 주목적마저 달성하지 못하고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을 포함하여 4개국이 사실상 추가로 핵보유국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인도, 파키스탄이 차례로 핵실험을 하였고 북한도 2008년 첫 핵실험을 한 이후 현재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간 미국이 선두에 서서 핵비확산 체제를 공고히 하고 핵무기 확산을 억지하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국가안보상 핵무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가들은 제재를 뚫고 기어이 핵무기를 확보했다.
 
따라서 NPT 체제는 부분적 성공은 거두었으나 지금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핵무기를 5대 강국만 독점하려 하였으나 4개국이 더 핵무기 보유국으로 등장하여 그 독점체제가 허물어졌다. 이런 독점체제가 허물어지는 것은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이라 하고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무기를 더욱 다량화·다종화하는 것은 핵무기의 수직적 확산이라고 한다. NPT 체제에 반하는 핵무기의 수평적·수직적 확산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NPT 6조는 ‘핵무기 보유국 간에 핵무기 경쟁 중지와 핵 군비 축소를 위해 효과적으로 교섭하고 완전한 군축을 위한 조약을 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 보유국들은 이를 지키지 않고 최근 핵무기의 수와 종류를 더욱 늘리고 있어 이 조약의 정신과 배치되는 행태를 보인다. 또한 NPT 체제는 핵무기 보유국은 비보유국에 대해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 위에 성립되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북한은 우리에게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 결과 NPT를 잘 준수하는 국가의 안보만 위험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NPT 4조는 ‘동 조약의 어떠한 규정도 평화적 목적을 위한 원자력의 연구·생산 및 사용을 개발할 수 있는 모든 조약 당사국의 불가양 권리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핵무기 독점과 핵 평화적 이용 간 균형 모색을 조약은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NPT 체제는 핵무기 독점화만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고 다른 회원국의 평화적 이용은 여전히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심지어 4조는 ‘핵폭발의 평화적 응용에서 발생하는 잠재적 이익은 무차별의 기초 위에 핵무기 비보유국에 제공되어야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체코 원전 수출 협상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핵폭발이 아니라 핵발전에 대한 기술 이전도 제대로 되지 않고 핵보유국들이 원천 기술을 독점하고자 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런 현상도 NPT 체제가 본래 취지대로 작동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원자로 25기를 가동하면서 나오는 폐연료를 재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보관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 저장시설도 포화 상태가 되어 재처리를 하지 않고는 원자력 발전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이 문제도 미국이 우리와 맺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데 미국이 우리에게 핵연료의 재처리를 허용해 주지 않아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 재처리 권한을 미국에서 인정받아 사용후 연료를 농축·재처리하여 보관하고 있다. 미국은 편의에 따라 국가별 차별 대우를 하고 있다.
 
또한 NPT 10조는 ‘동 조약상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최고 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결정하는 경우 동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자국의 적대국이 핵무기를 보유하여 자국의 안보가 절체절명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 이 조약 당사국도 조약의 적용을 일시 중단하거나 탈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아예 NPT에 가입하지 않았고 심지어 북한마저도 이 조항을 이용하여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였다. NPT 10조뿐 아니라 ‘조약에 관한 빈 협약’에서도 중대한 사정 변경이 발생하였을 때 조약의 이행을 중지하거나 조약에서 탈퇴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는 우리 안보 상황에 중대한 사정 변경이 발생한 것이므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도 폐기하고 NPT 체제에서 합법적으로 탈퇴하거나 적용유예를 선언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적어도 NPT 체제를 통한 제재는 피할 수 있다.
 
이처럼 NPT 체제의 작동 상황과 법적인 검토를 해보면 우리가 NPT 당사국이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논리에 맞지 않다. 비유로 말하자면 우리 안보라는 초가집 지붕에 불이 났는데 이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NPT 체제라는 기와집 기와 몇 장 부서져 나갈까 걱정하는 태도이다.
 
법리적으로는 NPT 체제로 인해 우리 손발이 묶이는 것은 아니더라도 미국이 선두에서 국제 제재와 양자 제재를 가할 가능성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실상 제재로 인한 경제적 피해 발생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고 반대론자들도 이를 걱정하여 반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스라엘이 핵 개발을 하는 동안 이를 암묵적으로 승인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도 우리의 핵자강 노력이 미국의 장기적 국익에 부합된다는 점을 부각해 미국을 설득해야 할 때이다. 미국은 앞으로 대만, 남중국해와 관련하여 중국만 견제하기에도 힘에 부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이 한반도에서 무슨 일을 일으키면 미국의 주전력이 한국에도 분산 전개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북한이 곧 ICBM 재진입 기술을 과시하게 되면 미국의 우리에 대한 핵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성도 흔들리기 십상이다. 우리가 재래식이든 핵무기든 북한을 우리 혼자 힘으로 억제할 수 있어야 미국의 장기적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우리의 자세는 트럼프가 집권하게 되면 트럼프가 내세울 신안보 구상에도 부합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 우리의 핵자강을 허용할 가능성이 열릴 수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을 먼저 개정하여 재처리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 미 대선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후퇴하고 강대국 간 협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NPT 체제는 미국 패권하에서 존재했던 이 두 조건을 기반으로 성립된 것인데 이 여건 자체가 흔들리는데 우리가 NPT 체제 수호에 계속 집착해야 할까? 판이 완전히 바뀌는데 옛 문법에 얽매이면 위험이 닥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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