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0일 앞으로 다가 온 미국 대선의 향방에 대해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국 정부들, 민간 기관 그리고 언론들이 이번 대선의 결과를 예측해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번 선거만큼 예측하기 힘든 박빙의 선거는 드물었다. 지난 6월 바이든과 TV토론, 그 이후 피격사건으로 트럼프 대세론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미 민주당 후보가 바이든에서 해리스로 변경되면서 트럼프 우세론이 힘을 잃었다. 그 뒤 TV토론에서 해리스가 의외로 선전하면서 해리스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지지율을 보고 해리스의 승리를 속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지지율은 강물의 표면에 일어나는 잔물결이기에 바람에 따라 변하지만 강의 흐름을 결정짓는 것은 밑바닥 민심의 흐름이다.
지지율은 두 후보 개인에 대한 대중들의 선호에 따라 변하지만 미 대선은 두 후보 개인 간 대결이 아니라 그 후보를 밀어주는 두 세력 간의 대결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두 후보의 지지집단 성향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고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는 저변의 민심을 파악하는 것이 긴요하다. CNN 등 미국 다수 언론들은 친민주당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이 전하는 분석이 미국 민심을 제대로 대변한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들은 대체로 미 주류 언론들의 논조를 반영하여 보도하는 데 익숙하다. 특히 지난 TV토론 직후 8개의 주요 언론사 인터넷판 1면 제목이 ‘트럼프가 해리스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였다. 이는 CNN이 내건 제목을 그대로 베낀 것인데 한둘도 아니고 8개 언론사가 이를 그대로 차용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CNN 의존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자세를 견지할 경우 우리는 미국 대선을 오독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대선 이후 우리의 대응 방안에도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을 잘 읽기 위해서는 큰 흐름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큰 흐름을 짚어본다.
또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미국 패권의 향방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는 현재 미국이 쇠퇴 중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토론 서두에 이를 밝혔다. 그는 쇠퇴하는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한다. 해리스는 미국이 여태 해왔던 정책, 즉 미국이 지도적 위치에서 국제문제에 계속 개입하여 미국 주도 질서를 지키려 한다. 즉 트럼프는 미국의 국력 회복을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겠다는 견해인 반면 해리스는 별 문제 없으니 영양제 정도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상반된 자가진단의 차이에 대해 미국 유권자들이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유권자들이 지도력은 있으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후보와 방향성은 예측되지만 지도력과 비전이 확실치 않은 후보 중에 누구를 선호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는 미국 유권자들이 미국의 현 상황을 정상으로 또는 비정상적으로 보는지 여부에 따라 그 선택이 달라질 것이란 말이다. 최근 미 정부는 금리를 인하하고 경제지표 향상을 선전하지만 미국의 중산층 이하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그들이 현 경제 상황을 힘들다고 피부로 느끼면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해리스를 지지할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물론 공화당 일부에서도 트럼프를 ‘이상한(weird) 사람’으로 몰지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미국인들이다. 그들은 미국이 쇠퇴한 책임을 외국과 미 기득권층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국 민심의 바닥을 형성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이들의 대변자라 봐야 한다. 그는 쇠퇴기 미국의 증상을 반영하는 인물이지 그가 미국을 이상하게 바꾸려는 인물은 아니다. 그래서 교육받은 중산층 이상에서는 해리스를 지지하고, 중산층 이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 그러므로 언론, 여론조사 등에서는 해리스의 지지가 높게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두 후보는 미국 정치사상사에서 대립되는 두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현실주의 사상을 대변하고, 해리스는 민주당의 이상주의 계보를 대변한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미국 고립주의를 주창하는 정치가들이 많았으며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미국은 영구적이고 구속적인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때부터 세계 연방체제를 염두에 두고 외국과 연대할 것을 주장했다. 미국의 이 같은 다른 세계관은 미국의 국력 부침에 따라 전면에 부상하는 시기가 달랐다. 미국이 강성할 때는 국제 연대주의가, 미국이 약할 때는 미국 우선주의가 더 세력을 얻게 마련이다. 미국 유권자들이 지금 미국의 국력이 어떤 지점에 있다고 판단하는지에 따라 그들의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두 후보의 정치사상적 배경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에 대해서 알아봤으니 이들 중 누가 되면 우리에게 유리하고,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남게 된다.
우선 다른 나라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트럼프가 되면 주의해야 한다. 그의 정책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변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안전띠를 단단히 매야 할 것이다. 트럼프는 현상을 타개하려는 생각은 강하므로 북한 문제를 비롯해 진행 중인 2개 전쟁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매듭을 지으려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를 계속하며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을 해리스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매듭지을지 우리가 이를 알고 대비를 잘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위기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중국과 관련해서 동맹의 역할을 확대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한 뒤 우리 외교가 창의성과 담대성을 발휘한다면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이고 아니면 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즉 트럼프 정책보다는 이에 대한 우리의 대책이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대중 관계에서도 더 강경한 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해리스는 중국과 분리(decoupling)하지 못하고 위험저감(derisking) 조치를 계속할 것이다. 이에 반해 트럼프가 취할 분리정책은 우리 기업들에 단기적으로 힘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트럼프의 정책이 미국의 국력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면 오히려 국제 정세는 다시 미국이 주도권을 잡고 안정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안정된 국제질서는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다. 미·중 간 갈등이 길어지면서 불확실성이 계속 커지는 싱황보다는 오히려 단기간에 미래 방향이 가시화되는 것이 국제사회에 나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깜짝 도발할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40일은 우리에게 잠 못 드는 밤이 될 수 있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