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상장사에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밸류업 정책 핵심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 확대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한 기업은 전체 공시한 기업 중 절반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금융투자업계는 상장사들이 밸류업 공시 참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확대와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밸류업 공시에 따르면 연초 이후 밸류업 공시를 한 기업 수는 51곳. 이 중 19곳만 지금까지 자율공시를 올렸고, 나머지 기업 32곳은 공시 예정이라고 우선 올려놨습니다.
가장 최근에 공시를 했던 롯데 계열사의 경우 지난달 27일 롯데렌탈을 시작으로 이달 롯데쇼핑(11일)과 롯데칠성음료(16일), 롯데웰푸드(17일)가 연이어 기업가치제고계획을 공시했습니다.
4사 모두 주주환원책을 강조하며 배당확대를 약속했는데요. 롯데렌탈과 롯데웰푸드는 더 나아가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까지 밝혔습니다. 자사주 매입은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이고, 소각은 잠재적으로 시장에 풀릴 수 있는 물량을 줄인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주주친화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밸류업 지수 편입 지표인 ROE, PBR 목표도 두드러집니다. 롯데웰푸드는 ROE 8~10%, 롯데칠성음료는 2028년까지 ROE 10~15%, 롯데렌탈은 ROE 15%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총주주환원율(TSR) 35%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는데요. 이 같은 밸류업 구상을 달성하려면 지난해 순이익을 기준으로 최소 4조원 이상의 주주환원금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PBR을 제시한 회사도 있습니다. 신한지주, 키움증권, 콜마홀딩스 등이었습니다. 신한지주는 중장기 전략으로 PBR 1배 이상을 달성하겠다고 공시했습니다. 키움증권은 3년 뒤까지 PBR을 1배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안내했습니다. 콜마홀딩스는 내년까지 PBR 0.7배를 달성하고 이후 이를 1배까지 높이겠다고 설명했습니다.
ROE, PBR 제시 외에도 대부분의 기업은 지배구조 개편, 자사주 소각, 주주환원 강화, 실적 개선,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메인으로 내세웠습니다.
‘자율공시’라는 이름처럼 기업이 공시를 올리는 방식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기업은 공시 버튼을 누르면 한눈에 밸류업 목표를 파악할 수 있었고, 또 일부 기업은 첨부 파일을 찾아 필요 시 투자자가 직접 궁금한 항목을 직접 찾아야 합니다.
기업들은 처음 자율공시가 도입됐을 때부터 혼란스럽다는 반응이었는데요. 올리는 양식 자체가 없다 보니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올릴 줄 몰라 일단 올릴 예정이라는 ‘안내공시’만 초반에 올라왔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상장사들이 구체적인 PBR과 ROE, TSR 등을 제시할 수 있는 양식과 이를 실행시킬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는 세법개정안 발표를 통해 상장 기업에는 밸류업 자율공시 이행, 배당 및 자사주소각을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상장업계는 아직 자율공시 부담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문종열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경제조사팀장은 "기업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한 공시 이행, 배당 및 자사주 소각 등에 대한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면서 "공시를 이행하지 못했을 시 인센티브를 제외하고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이 자금 조달을 하지 못하면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온라인상에서는 '불성실 공시' 기업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라고 말합니다.
금융당국은 더 많은 상장사들이 목표 PBR과 ROE, TSR을 자신있게 지시할 수 있도록 유인책과 안전판은 무엇이 있을지, 또 기업은 밸류업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모두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