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재판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 퇴임식이 열렸다. 6년간에 대한 소회와 아쉬움을 밝혀야 할 퇴임식에서 이 재판소장과 이영진 재판관은 이례적으로 최근 헌법재판소 상황을 의식한 듯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우선 이 소장은 "헌법재판소의 현재 상황이 위기 상황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우려하며 업무의 효율성·신속성 높이기, 사법의 정치화 경계 등을 후임자들에게 주문했다.
이어 이영진 재판관도 "헌법연구관 증원이 매우 절실하다. 양적으로 접수 사건 수가 증가하는 것과 함께 질적으로도 보다 심도 있는 헌법적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며 "향후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헌법연구관을 획기적으로 증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이들 후임자 인선을 하지 못해 심리가 정지될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이들 퇴임에 앞서 헌재는 지난 14일 '재판관 9인 중 7인 이상이 출석해야 심리가 가능하다'는 헌법재판소법 효력을 정지하면서 마비사태는 간신히 피했다.
법조계에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당분간 6명 체제로 운영될 헌재의 심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기에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재판관 6명 체제가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주심 재판관이 있으니까 심리는 가능할 것 같다. 우선 재판관 여섯 명 의견을 모으고 나중에 추가로 재판관 세 사람이 들어오면 보충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처리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해당 문제는 20년 전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지적됐던 사안이다. 찾아보면 우리나라 말고도 이런 문제를 겪는 여러 나라들이 있다"며 "독일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후임자가 임명이 안 된다면 임명될 때까지 기존 재판관이 그대로 연임하고, 오스트리아는 예비재판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난의 화살은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국회로 쏠렸다. 통상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1인, 여야 합의 1인 등 3인을 정하는 것이 관례지만 지난 총선에서 승리해 거대 야당이 된 민주당은 3인 중 2인을 추천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후임자로 김성주 광주고등법원 판사, 정계선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여야 1명씩 추천하고, 1명은 여야 합의로 추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최근 퇴임하는 이 소장을 여당 몫 헌법재판관 후보로 재추천하는 방안을 거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민주당은 이 소장이 윤석열 대통령 대학 동기라 믿을 수 없다며 연임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