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금속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인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MBK파트너스-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간 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국내 2위 사모펀드 MBK 행보를 두고 반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경영권 확보 시도가 사모펀드 본연의 취지에서 벗어난 데다 고려아연을 중국을 포함한 해외에 매각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MBK-영풍과 현 고려아연 경영진 간 분쟁은 지난 12일 MBK가 현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특수관계인(장형진 고문 일가)과 계약을 맺고 고려아연 최대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행사하기로 밝히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IB(투자은행)와 증권가에선 이러한 MBK 측 행보를 두고 사모펀드 본연의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2004년 정부가 증권투자회사법을 제정해 국내 사모펀드를 허용한 이유는 역량이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면서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데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투자 대상과 투자 비중 등에 대한 제한마저 풀었다. IMF 위기 당시 해외 사모펀드가 국내 기업을 마구잡이로 인수해 해외로 매각하던 것을 막기 위한 성격도 컸다.
하지만 이번에 MBK가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고려아연은 올 2분기에만 연결기준 매출 3조581억원, 영업이익 2687억원을 기록한 초우량 기업이다. 작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3.8%, 72.6% 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총 2055억원 규모 중간배당을 실시하며 주주환원에도 적극적이다.
고려아연이 이러한 경영 성과를 내는 상황에서 MBK가 현재 고려아연을 이끄는 최윤범 고려아연 대표이사 회장을 밀어내고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일반 상식으론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고려아연 주사업장인 온산제련소가 위치한 울산시와 정치권 그리고 고려아연 직원들 사이에선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다.
MBK는 지난해 12월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이던 한국앤컴퍼니에 개입해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조현범 회장과 분쟁 중이던 조현식 고문과 손잡고 회사 주식을 주당 2만원에 사들이며 경영권 확보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당시에도 사모펀드의 명분 없는 개입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IB업계에선 MBK가 ‘기업사냥꾼’적 면모를 띠는 것을 두고 잇단 투자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행보로 본다. 10조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딜라이브(2조2000억원) △네파(9970억원) △홈플러스(7조2000억원) 등을 인수했는데 재매각을 하지 못해 수년째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 실패가 잇따르면서 사모펀드 약정액마저 한앤컴퍼니에 2년 연속으로 밀리며 2위로 밀려났다.
정치권·지자체·직원들이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익을 내기 위해 ‘일단 팔고 보자’식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영권 확보를 주도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고려아연은 한국 기간산업 기업으로 중국에 매각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에도 팔지 않고 국내 기업에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법적 효력이 없는 단순 발언이다. 펀드 매각 수익을 낼 시점이 다가오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펀드를 결성한 MBK가 성과보수를 받으려면 최소 투자 원금(3조5000억원) 대비 1.5배(5조2500억원)에 지분을 팔아야 한다. 산업계에선 거금을 들여 고려아연 지분을 인수할 만한 유력한 후보로 호남운능, 선전다이나노닉, 화유코발트 등 미국 IRA법 우회를 노리는 중국 주요 양극재 기업을 꼽고 있다.
최윤범 회장은 추석 연휴에도 일본 도쿄로 출장을 가는 등 고려아연 경영권을 지키고자 백기사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국민연금을 쥐고 있는 정부가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7.57%에 따른 의사 표현을 명확히 해야 이 혼란을 끝낼 수 있다. 국가 기간산업 기업이 해외로 매각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게 연기금 운용 이유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