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31명의 사상자를 낳은 아리셀 화재가 단순한 일차전지 문제가 아닌 업체의 총체적 부실이 주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23일 오전 합동 브리핑을 통해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아리셀은 2021년부터 군에 납품할 전지를 별도로 제작해 검사용 시료와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데이터를 조작해 국방기술품질원을 속여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리셀은 2021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7억원 상당의 전지를 군에 납품했다.
아리셀은 올해 4월분 국방기술품질원이 무작위로 선정한 시료를 바꿔치기하면서, 선정된 시료에 적힌 서명을 위조한 사실이 밝혀져 납품을 위한 품질검사에서 처음으로 미달 판정을 받았다.
아리셀은 올해도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 계약을 맺고, 2월 말 8만3000여개의 전지를 납품한 데 이어 4월 말에도 추가로 납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규격 미달 판정으로 인해 4월 납품분을 재생산한 데 이어 6월 납기일까지 다가오자 무리한 제조공정 가동을 시작했다.
아리셀 공장은 일평균 생산량의 2배에 해당하는 ‘하루 5000개 생산’ 목표를 설정하고, 비숙련 근로자 53명을 신규 공급받아 교육 없이 주요 제조공정에 투입했다. 이는 불법 파견에 해당하며, 이로 인해 불량률이 급증했다.
파견법에 규정된 32개 파견근로 허용 업종에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업무는 포함되지 않아 불법에 해당한다. 3∼4월 2.2%였던 불량률은 5월 3.3%, 6월 6.5%로 급증했고, 케이스 찌그러짐이나 전지 내 구멍 등 기존에 없던 유형의 불량도 추가 발생했다.
아리셀은 문제가 발생한 제품을 망치로 쳐 결합하거나 구멍 난 케이스를 재용접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산을 이어갔다. 발열 문제를 인지한 후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발열전지를 납품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부실한 대응이 이어졌다.
비상구 설치 등 대피경로 확보에도 부실 문제는 여실히 드러났다. 불이 난 공장 3동 2층에선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착할 수 있지만, 일부는 피난 방향과 반대로 열리도록 설치됐으며,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는 문에 잠금용 보안장치가 설치되기도 했다. 근로자들에게 사고 대처 요령에 관한 교육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화재 직후 수사본부를 편성하고, 아리셀 관련 13곳에 대한 압수수색과 합동 감식을 진행했으며, 피의자 및 참고인 103명을 131회에 걸쳐 조사해 이 중 18명을 입건했다.
경찰은 아리셀이 납기일을 무리하게 맞추기 위해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이상 제품을 발견하고도 검수 없이 정상 제품 취급하는 등 공정상 부실이 만연한 결과 불량 전지로 인해 폭발 및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이상 제품을 검수 없이 정상 제품으로 취급하는 등 공정상 부실이 다수 발견됐다”며 “이를 통해 분리막 손상 또는 전지 내·외부 단락이 발생해 폭발 및 화재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6월 24일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불이 나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