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약수동 적산가옥서 살 적에 정말 추웠어요. 아버지는 휘발윳값 등 돈을 아끼시려고 집 안방 앞의 가늘고 긴 마루에서 소품을 그리곤 하셨죠. 큰 그림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며, 소품에서야말로 밀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고(故) 유영국 화백(1916~2002)의 개인전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의 개최를 앞둔 가운데 19일 PKM 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자야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이처럼 회상했다.
유영국은 한국 전통의 자연관과 서양의 추상 미술을 결합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서구 미술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한국적인 자연의 모습을 독창적으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다.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고집적이면서도 기품 있는 태도를 유지한 것이다.
대상 역시 고착화하지 않았다. 자연을 역동적이고 남성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동화에 나올법한 아기자기한 형태로 그리는 등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작품도 많이 남겼다.
이번 전시의 영문명은 ‘Yoo Youngkuk: Stand on the Golden Mean’이다. Golden Mean의 뜻은 ‘중용’으로,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 잡힌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적 격변 속에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단단한 내면과 품위를 유지한 유영국의 중용의 미를 조명하기 위해 이 단어를 선택했다.
아들인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중용이 아버지의 작품 및 삶을 잘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용의 ‘중(中)’자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며 “세상의 시류가 바뀌어도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 나름대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삶 역시 중용 그 자체였다. 일제강점기에도 신념을 지키며 작업을 이어갔다. 일본 유학 시절 일제가 예술가들에게 종군화 선전을 강요하며 추상화를 억압하자, 그는 귀국해 어부가 됐다. 이후 한국 전쟁이 터지자 가정의 생계를 위해 양조장을 차렸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가장으로의 책임 사이에서도 중용을 지킨 것이다.
유진 이사장은 “아버지는 여름에는 민소매 차림으로 직접 캔버스를 만들곤 했다"며 "못을 입에 물고 혼자서 일하신 기억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스스로를 인텔리나 모더니스트가 아닌, 작업하는 노동자로 여겼다”고 회상했다.
유영국의 작품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극찬을 받았다. CNN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꼭 봐야 할 행사 중 하나로 유영국의 전시를 꼽으며 “유영국은 전쟁과 점령을 겪었지만, 한국의 자연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생동감 있고 웅장한 추상화를 창조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PKM 갤러리는 다음 달 열리는 프리즈(Frieze) 서울에서도 유영국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는 10월 10일까지로, 관람료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