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고대역폭 메모리) D램을 둘러싼 1라운드 경쟁에선 SK하이닉스가 완승했다. 하지만 신형 GPU(그래픽처리장치) 및 추론용 AI칩용 GDDR7(8세대 그래픽메모리) D램과 저전력 AI칩용 LPDDR5X(7세대 저전력메모리) D램은 삼성전자에 기술적 우위가 있는 만큼 올 하반기부터 엔비디아 공급망 구도가 일부 달라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주당 24만3000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엔비디아 주가가 급등하면서 동반 상승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칩에 탑재되는 HBM D램의 주요 공급사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8단 적층 HBM3E(5세대) D램을 고객사(엔비디아)에 공급한다고 밝혔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올해 HBM 생산분은 이미 솔드아웃(매진)됐고 내년 물량도 대부분 완판됐다"고 말했다. 모두 엔비디아에 HBM D램을 공급해서 낸 성과다.
삼성전자는 현재 엔비디아에 8단·12단 HBM3E D램을 공급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언제 공급 승인이 날지는 불투명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와 (HBM D램 공급을 위한)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다"며 "(테스트가) 아직 안 끝난 만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전영현 부회장 주재로 열리는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부문 글로벌 판매전략회의 핵심 의제도 HBM D램을 포함한 엔비디아 D램 공급 확대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HBM D램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만큼 공급가도 지속해서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공급가는 대외비이지만, 증권가에선 엔비디아 AI칩 원가에서 HBM D램 비중이 현행 3%에서 내후년 6~10%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엔비디아 AI칩(호퍼)은 1개당 4~6개의 HBM D램을 연결한 반면 신형 AI칩(블랙웰)은 8~12개의 HBM D램을 연결하는 만큼 AI칩 원가에서 HBM D램이 차지하는 비중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이에 증권가에선 올해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슈퍼사이클(대호황)이었던 2018년을 넘어서는 성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20조8000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지금까지 AI 인프라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오픈AI)·구글·메타 등 빅테크의 초거대 AI 모델 학습 수요로 학습·추론용 AI칩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반면 내후년부터는 초거대 AI 모델을 활용한 실제 AI 서비스 확산으로 추론용 AI칩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시장조사업체 베리파이드마켓리서치는 지난해 158억 달러 규모였던 추론용 AI칩 시장이 2030년 906억 달러로 6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엔비디아도 HBM D램을 탑재한 학습·추론용 AI칩보다 GDDR D램을 탑재한 추론용 AI칩을 중심으로 제품 구성을 변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GDDR D램 관련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AI칩용 D램 경쟁에서 뒤처졌던 삼성전자가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소비자용 블랙웰과 이를 기반으로 만든 추론용 AI칩은 차세대 그래픽 D램인 GDDR7을 탑재할 것이 유력시된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32Gbps GDDR7 D램을 공개한 데 이어 올해 초 데이터 처리속도를 37Gbps로 끌어올렸다. 경쟁사보다 우수한 성능으로 엔비디아·AMD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 3월 엔비디아 'GTC 2024' 행사에서 40Gbps GDDR7 D램 샘플을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일각에선 엔비디아가 자사 AI칩의 가장 큰 문제인 전력소모를 낮추기 위해 LPDDR D램 사용 비중을 높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황 CEO는 지난 1분기 실적 컨콜에서 "LPDDR D램을 사용해 서버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처리장치(CPU)와 AI칩을 결합한 '그레이스 블랙웰' 플랫폼에 LPDDR5X D램을 탑재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에 엔비디아가 삼성전자가 지난 4월 공개한 10.7Gbps LPDDR5X D램 고객사로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원래 애플·퀄컴 등 모바일 프로세서(AP) 제조사에 공급하기 위해 만든 플래그십(최고급) 모바일 D램이지만, 이를 엔비디아에 공급함으로써 AI 서버로 활용처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