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개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프랑스가 혼란에 빠졌다.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하는 극우와 좌파가 의회를 장악하면서 정부 재정적자가 치솟고, 프랑스 국채가 휴지 조각으로 전락할 것이란 공포가 팽배하다.
16일(현지시간) CNN, 블룸버그통신 등에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프랑스를 주시하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소속 유럽 정부 등급 수석 전문가인 프랑크 길은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정책은 “정부 재정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정부 신용등급에서 고려 사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S&P는 지난달 프랑스의 정부 재정적자 급증을 이유로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강등한 바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오는 30일과 내달 7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극우 혹은 좌파가 프랑스 의회를 이끌게 된다면 프랑스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RN은 아직 세부적인 경제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약 200억유로(약 29조5000억원)를 들여 연료 및 에너지 판매세를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RN은 또한 국민연금 수령 연령 하향 조정, 정부 지출 증가, 프랑스 우선 경제 정책들을 주장해왔다.
프랑스 정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10.6%이며, 재정적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GDP의 5.5%에 달한다. 정부 지출 증가를 주장하는 극우 혹은 좌파가 의회 다수당이 된다면, 정부 재정 건전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버그 소속 이코노미스트들은 "(극우 성향) 르펜이 의회에서 주도권을 잡고 정부 재정 지출 및 프랑스 우선 보호주의 정책들을 추진한다면 리즈 트러스식 금융 위기로 귀결될 수 있다"며 "이는 심각한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2022년 9월 영국 총리로 취임했던 리즈 트러스는 당시 주요 정책으로 대규모 감세와 정부 지출 증가를 전면에 내걸면서 파운드화 및 국채 가격 급락을 야기했다. 결국 그는 취임 45일 만에 총리직에서 내려오며, 영국 사상 최단기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정치 격변 가능성에 프랑스 금융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지난주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급등하며 ‘유럽의 문제아’로 통했던 포르투갈의 국채 금리를 웃돌았다. 또한 투자자들이 프랑스 주식을 대거 매도하면서 지난주에만 증시에서 약 2100억 달러가 증발했고, 그 결과 프랑스 주가지수 CAC40은 지난 1주간 6% 이상 급락했다. 프랑스 국채 보유량이 높은 소시에테제네랄, BNP파리바, 크레딧에그리꼴 등 은행주는 10% 넘게 하락했다.
외신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도박이 공포를 몰고 왔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이란 승부수를 던지며, RN이 프랑스 의회와 정부를 장악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좌파 4개 정당(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사회당·녹색당·공산당)이 재빨리 뭉치며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을 구축한 점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당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는 평가이다.
총 577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프랑스 총선은 지역구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당선되고,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자 둘이 2차 투표를 치러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를 당선자로 결정한다. 하지만 여론 조사상 2차 투표에 르네상스당의 후보가 진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