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정부가 변호사들의 노동법 위반 실태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야근의 일상화’에 시달리는 공공연한 노동법 위반 실태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과 무관치 않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일부 로펌이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는지 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근로기준법상 상한인 주 52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근로감독 청원을 냈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 8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내놓은 '변호사의 채용·근무 및 일·가정양립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0시간 이상 60시간 미만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22.3%, 60시간 이상 70시간 미만이 6.9%, 70시간 이상도 5.2%로 나타났다.
고액 연봉을 받는 특성상 대형로펌일수록 변호사가 무리하게 일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인식이 퍼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때마침 고위 파트너 변호사(로펌 지분을 가진 변호사)도 근로자란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 나왔다.
판사 출신인 A 변호사는 2016년 국내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로 입사해 조세팀장을 맡았다. 그는 2020년 6월 법정에서 변론을 하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 이후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법상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이를 거부했다. 일반적으로 기업 임원급으로 분류되는 파트너 변호사를 근로자로 볼 수 없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은 △A 변호사가 회사 주요 경영 사항을 결정하는 운영위원회에 속한 적이 없다는 점 △A씨가 자율적으로 수임할 사건을 결정하기 보다 운영위에서 배당한 사건을 담당했다는 점 △A씨가 일정한 시간에 회사 사무실로 출근하고 매일 근무내용과 시간을 사내 프로그램에 입력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근로자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고인이 법인으로부터 개개 사건의 업무수행 내용이나 방법 등에 관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는 전문적 지적 활동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변호사 업무의 특성에 기인한 것일 뿐 고인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지표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변호사들이 고객에게 수임료를 청구하기 위해 작성하는 근무시간표인 '타임시트'를 살펴 봤을 때 A씨의 사망 4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약 56시간이라고 판단, 과로를 인정했다.
유족 측을 대리한 김용문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전문직 종사자 중에서도 관리·감독 역할을 수행하는 고위직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법조인들이 장시간 노동과 업무 스트레스로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직·사무직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제조업 중심의 산재 판단 기준을 고수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