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올해 1분기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적자를 면했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 메탈 가격 하락 속에도 고부가 판매 전략과 합리적인 투자 기조로 경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삼성SDI는 연결 기준 1분기 매출 5조1309억원, 영업이익 2674억원을 기록했다고 30일 공시했다. 이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각각 4%, 29% 하락한 수치다. 전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8%, 영업이익은 14% 감소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생산제조세액공제(AMPC) 수혜액은 467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1분기 실적이 감소한 이유는 리튬 가격 급락 영향으로 평균판매가격(ASP)이 떨어지면서다. 여기에 더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소형 모빌리티향 원통형 배터리의 수요 감소가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다만 삼성SDI는 동종사와 비교하면 자동차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한 실적을 냈다. 그나마 경기 불황을 덜 타는 프리미엄 차량용 배터리 판매가 양호한 수준을 보이면서 자동차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한 영향이다. 원재료 가격 추이 반영에 따른 판가 하락 영향이 있었지만, 이러한 고부가 가치 상품의 비중 확대로 수익성 확보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갤럭시S24 판매호조에 힘입어 파우치형 소형 배터리의 매출과 수익성이 개선된 영향도 컸다.
AMPC를 제외하고도 흑자를 유지한 건 삼성SDI가 유일하다. 증권 업계에서는 삼성SDI의 신중한 투자 기조가 유효했다고 평가한다. 삼성SDI는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 내에서 투자를 진행하는 기조를 줄곧 유지해 왔다. 그간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5조~10조원 수준의 설비투자를 쏟아부을 때 삼성SDI는 2조~4조원 대의 투자만 집행한 이유였다.
전기차 수요 둔화는 2분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상반기까지는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고객 수요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투자 속도 조절을 공식화했다. SK온도 "고객사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능력 증설 시점에 대한 탄력적인 운영을 결정했다"고 언급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삼성SDI는 올해 투자 규모를 전년보다 늘리기로 했다. 당분간 전기차 둔화세가 이어지겠지만 안정적 재무 상태와 견조한 실적을 바탕으로 불황을 견딜 체력을 갖췄다는 설명이다. 또 올해부터 AMPC 수취가 실적에 처음 반영되면서 손익 개선 효과도 있다.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김종성 삼성SDI 경영지원실장 부사장은 "최근 고금리와 글로벌 경기 회복 지연으로 전기차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으나 중장기 성장세는 여전히 높을 것"이라며 "전년 대비 투자 규모가 상당 수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헝가리와 말레이시아 공장 증설, 미국 합작공장 신규 건설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며 "46파이(지름 46㎜) 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 리튬인산철(LFP) 등 신제품 관련 투자도 적극 계획하고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