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물류업계가 원부자재·유가 상승을 근거로 가격을 올렸다가 한발 물러섰다. 정부가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원부자재 값 부담과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 사이에 끼인 식품업계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편의점 일반 택배 운임 인상을 지난 22일 발표했다가 전날 '없던 일'로 번복했다. CJ대한통운은 입장문에서 "유가와 최저임금 등 원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고객사인 편의점 업체들과 택배 단가 50원 인상을 협의 중이었으나 국민 부담을 고려해 인상 시기를 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롯데웰푸드도 다음 달부터 제품 가격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정부 압박에 인상을 6월 1일로 한 달 늦췄다. 초콜릿 주원료인 코코아(카카오 열매를 가공한 것) 시세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롯데웰푸드는 지난 18일 가나초콜릿과 빼빼로 등 17종 제품 가격을 5월 1일부터 평균 12% 올리려 했다.
식품·물류업계는 원부자재 값이 오르는 상황에 정부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돼 속앓이 하고 있다. 정부 압박에 못 이겨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며 가격 인상을 억누르고 있으나 그럴수록 기업이 감내하는 부담은 커지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기업들이 총선 전까지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응하며 원부자재 상승분을 감내해 왔으나 이제는 한계에 돌입하면서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식품기업들이 고유가·원자재 값 상승분을 내부적으로 흡수했으나 이제는 버틸 여력이 없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도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박에 식품기업들은 원자재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100% 반영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수준으로만 인상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 원초 등 원재료 값 인상에 따라 동원F&B·CJ제일제당 등 식품 대기업들도 조미김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업들이 일제히 제품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이날 서울 롯데마트맥스 영등포점을 찾아 "고환율에 따른 수입 원가 상승, 임금 인상 등 제조원가 상승으로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한다"면서도 "물가 상승을 크게 자극하지 않게 가급적 인상 시기를 늦추고 인상 폭을 최소화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