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에 미술관을 반드시 건립하겠습니다.”
오는 4월 10일 실시되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짓겠다는 공약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다. 4년 전 총선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선거용 치적의 단골 메뉴다.
총선은 아니지만, 2년 전에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자, 지자체는 앞다투어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순간적인 승부욕에 휩싸인 미술품 경매장을 연상시켰다. 어떤 시에서 ‘설립 추진단’을 구성해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일주일에 몇 건씩 올라왔다.
기존에는 지자체가 공립 박물관‧미술관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문체부 장관에게서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받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지자체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는 게 골자다. 이 내용이 포함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안을 오는 7월 전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전국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2022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1199개다. 이 중 공립 박물관은 389개, 공립 미술관은 79개다. 현재 대부분의 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은 예산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예산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에 집중해야 할 때다.
공은 이제 지자체에 넘어갔다. 기존의 시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새로운 미술관과 박물관을 짓는 것이 맞는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새로운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으려면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 부지, 건축비, 수장고, 운영 인력, 소장품 구입비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지자체는 연간 운영비 등 중장기적인 예산을 세밀하게 계획하고, 설립 타당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해외사례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어느 부처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재단 법인화를 단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독일 등 해외 미술관을 보면 후원과 자체 사업을 통해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대기업 등 민간과의 협업을 넓혀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지자체 미술관을 ‘왕립 미술관’이라고 비판한다. 지자체장들이 자신의 선거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관장 등의 자리를 논공행상으로 나눠준다는 이유에서다. 악습은 유권자의 한 표로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