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만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미술치료 최고 권위자이자 트라우마 전문가인 김선현 교수가 신간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한길사)를 내놨다. 나 자신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다.
김 교수는 지난 20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자화상(Self Portrait)’이라는 단어는 자아를 의미하는 ‘Self’와 자의식을 그린다는 뜻의 ‘Portray’가 합쳐진 것으로 자기를 ‘끄집어내다’ 또는 ‘밝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말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파블로 피카소, 타마라 드 렘피카 등 수많은 화가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다.
화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질문을 압축해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이미지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전달된다. 가끔씩 한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 발길을 떼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명화는 자신의 내면을 찾을 수 있는 최고의 길잡이가 돼준다. 김 교수가 엄선해 실은 거장 57명의 명화 104점에서도 알 수 있다.
표지를 장식한 명화는 렘피카의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다. 과감한 옷차림과 무심한 눈빛, 함께 그려진 쨍한 녹색 스포츠카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자화상은 1920년대에 그려졌다. 1898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렘피카는 어머니와 할머니, 이모 사이에서 ‘너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다.
파리 국제전시회에서 명성을 얻은 뒤 그린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는 남성중심적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는 태도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김 교수는 “코로나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후 혼란한 상황 속에서 위축돼 있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며 “이런 분들이 당당하게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자화상은 화가의 트라우마, 사회적 신분과 경제력, 마음속에 응어리진 충동까지 모든 것이 담긴 감정 저장고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독일을 좌지우지하던 권력자, 광기 어린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자화상을 남겼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 화가 지망생이었다. 미술학교 입시에 두 차례 실패한 히틀러는 절망과 궁핍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에 자원입대해 무공을 세운다.
어머니가 죽고 빈에서 노숙자 보호소를 전전하던 스물한살 히틀러는 1910년 그린 ‘자화상’에서도 초라한 모습이다. 자화상 속 얼굴을 뭉뚱그려서 표현, 자신의 모호한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머리 위의 X자는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히틀러는 사람을 작게 그리거나 혼자 그려 넣었다.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을 나타낸다.
김 교수는 “그림 속의 인물은 왼쪽에 편중됐다. 이는 그의 심리 상태가 과거에 머물거나,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전장의 벽’은 1918년에 그린 자화상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은 패했지만 히틀러 개인으로서는 정치인으로 탄생하는 중요한 시기였음을 드러낸다. 독일 전쟁터를 보면서 의지를 다지는 군인 히틀러의 자화상이다.
김 교수는 “히틀러의 그림에는 사람이 혼자인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도 속 깊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이 그림은 앞의 그림과 다르게 사람이 크게 그려져 있다. 자신감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피카소는 짧지 않았던 생애 동안 30여 점의 자화상을 남긴 작가다. 그는 인생의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자화상을 자아 성찰의 도구로 삼았다.
피카소가 열다섯에 그린 ‘자화상’(1896년)을 보면 자신의 재능을 뽐내듯 갈색 계통의 색만으로 질감을 살려 그림을 완성했다. 풋풋한 얼굴에 열망이 가득하지만, 흐릿한 어깨와 어두운 배경색에서 드러나는 불명확함은 부족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1901년 ‘자화상’은 이른바 ‘청색 시대’의 자화상으로 피카소에게 청색은 절망의 색이었다. 피카소는 단짝이던 카사게마스가 자살한 후 절망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청색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대변한다.
‘죽음에 맞선 자화상’(1972년)은 피카소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그린 자화상이다. 자화상은 해골 모양이다. 이를 통해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김 교수는 “두려움에 질린 듯도 하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뚫어지게 죽음을 직시했다”며 “지금까지 삶에 당당했으니 죽음에도 당당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대가다운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화가들의 명화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에게 다양한 위로를 전한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화가 페르낭 크노프는 1891년 자화상인 ‘내 마음의 문을 잠갔네’를 그렸다. 마음의 문을 잠근 그녀의 텅 빈 눈에는 눈동자가 없다.
김 교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고립 청년 그리고 세상과 대화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봤다”며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 불안을 제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성장할 수 있다. 청년들이 세상이라는 벽 앞에서 더 이상 마음 아프지 않고 한 발 더 내딛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미술치료 최고 권위자이자 트라우마 전문가인 김선현 교수가 신간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한길사)를 내놨다. 나 자신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다.
김 교수는 지난 20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자화상(Self Portrait)’이라는 단어는 자아를 의미하는 ‘Self’와 자의식을 그린다는 뜻의 ‘Portray’가 합쳐진 것으로 자기를 ‘끄집어내다’ 또는 ‘밝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말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화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질문을 압축해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이미지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전달된다. 가끔씩 한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 발길을 떼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명화는 자신의 내면을 찾을 수 있는 최고의 길잡이가 돼준다. 김 교수가 엄선해 실은 거장 57명의 명화 104점에서도 알 수 있다.
표지를 장식한 명화는 렘피카의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다. 과감한 옷차림과 무심한 눈빛, 함께 그려진 쨍한 녹색 스포츠카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자화상은 1920년대에 그려졌다. 1898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렘피카는 어머니와 할머니, 이모 사이에서 ‘너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다.
파리 국제전시회에서 명성을 얻은 뒤 그린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는 남성중심적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는 태도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김 교수는 “코로나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후 혼란한 상황 속에서 위축돼 있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며 “이런 분들이 당당하게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자화상은 화가의 트라우마, 사회적 신분과 경제력, 마음속에 응어리진 충동까지 모든 것이 담긴 감정 저장고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독일을 좌지우지하던 권력자, 광기 어린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자화상을 남겼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 화가 지망생이었다. 미술학교 입시에 두 차례 실패한 히틀러는 절망과 궁핍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에 자원입대해 무공을 세운다.
어머니가 죽고 빈에서 노숙자 보호소를 전전하던 스물한살 히틀러는 1910년 그린 ‘자화상’에서도 초라한 모습이다. 자화상 속 얼굴을 뭉뚱그려서 표현, 자신의 모호한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머리 위의 X자는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히틀러는 사람을 작게 그리거나 혼자 그려 넣었다.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을 나타낸다.
김 교수는 “그림 속의 인물은 왼쪽에 편중됐다. 이는 그의 심리 상태가 과거에 머물거나,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전장의 벽’은 1918년에 그린 자화상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은 패했지만 히틀러 개인으로서는 정치인으로 탄생하는 중요한 시기였음을 드러낸다. 독일 전쟁터를 보면서 의지를 다지는 군인 히틀러의 자화상이다.
김 교수는 “히틀러의 그림에는 사람이 혼자인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도 속 깊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이 그림은 앞의 그림과 다르게 사람이 크게 그려져 있다. 자신감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피카소는 짧지 않았던 생애 동안 30여 점의 자화상을 남긴 작가다. 그는 인생의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자화상을 자아 성찰의 도구로 삼았다.
피카소가 열다섯에 그린 ‘자화상’(1896년)을 보면 자신의 재능을 뽐내듯 갈색 계통의 색만으로 질감을 살려 그림을 완성했다. 풋풋한 얼굴에 열망이 가득하지만, 흐릿한 어깨와 어두운 배경색에서 드러나는 불명확함은 부족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1901년 ‘자화상’은 이른바 ‘청색 시대’의 자화상으로 피카소에게 청색은 절망의 색이었다. 피카소는 단짝이던 카사게마스가 자살한 후 절망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청색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대변한다.
‘죽음에 맞선 자화상’(1972년)은 피카소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그린 자화상이다. 자화상은 해골 모양이다. 이를 통해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김 교수는 “두려움에 질린 듯도 하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뚫어지게 죽음을 직시했다”며 “지금까지 삶에 당당했으니 죽음에도 당당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대가다운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화가들의 명화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에게 다양한 위로를 전한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화가 페르낭 크노프는 1891년 자화상인 ‘내 마음의 문을 잠갔네’를 그렸다. 마음의 문을 잠근 그녀의 텅 빈 눈에는 눈동자가 없다.
김 교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고립 청년 그리고 세상과 대화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봤다”며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 불안을 제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성장할 수 있다. 청년들이 세상이라는 벽 앞에서 더 이상 마음 아프지 않고 한 발 더 내딛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