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유력시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의 집단 방위와 관련해 위험한 수위의 발언을 내놓은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국방 홀로서기'에 나서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10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경선 유세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토 군비 증강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회원국들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나토는 회원국들에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2%를 국방비에 투입할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회원국들은 국방비 지출 규모가 이 가이드라인에 미치지 못해, 일각에서는 국방을 미국에 의존해 '무임승차'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나토 탈퇴를 공언하는 등 나토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둘 생각"이라는 이번 발언은 그 수위가 상당히 높아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번 발언은 나토 회원국 중 하나라도 외적으로부터 침입을 받을 시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군사 자원을 포함한 지원을 제공한다는 집단방위 내용을 규정한 나토 조약 제5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에서 나토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우리 동맹들에 대한 지원은 여기서 미국인들의 안전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된다면 그는 분명히 러시아가 침공하더라도 우리 나토 동맹국들을 버릴 것이고, 러시아가 그들에게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 역시 "동맹국들이 서로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모든 가정은 미국을 포함해 우리의 안보 전체를 잠식한다"며 "미국과 유럽 장병들을 더욱 위험에 처하게 한다"고 트럼프 발언에 반박했다.
블라디슬라프 코시니악 카미스 폴란드 국방장관은 SNS 엑스(옛 트위터)에 게재한 글을 통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라는 나토의 모토는 변함없는 약속"이라며 "어떠한 선거 유세도 나토의 안보를 갖고 장난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차츰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실제로 지난주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은 나토 회원국들이 러시아와 "수십 년간의 충돌"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고,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독일이 러시아와 수십 년간의 충돌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논의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트로엘스 룬드 포울센 덴마크 국방장관은 앞으로 3~5년 내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들 중 비교적 약한 국가를 공격함으로써 나토의 단결성을 '테스트'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2018년 트럼프 재임 당시 그와 같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던 에드가스 린케비치 라트비아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유럽이 국방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의 필수적 문제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