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2차 협력업체의 압박에 1차 협력업체가 합의금을 주고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한 것은 강박으로 인한 의사 표시로 볼 수 있어 취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사가 B사의 회생관리인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소송을 각하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 안산지원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2018년 9월부터 부품 단가 조정, 품질 관리 등 문제로 분쟁을 겪었다. A사는 공급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하고 빌려준 금형에 대해 반환을 요구했다. B사는 정산금을 지급해 달라면서 반환을 거부했고 갈등이 계속되면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맞받았다.
A사가 금형을 반환하라며 가처분 신청을 내자 B사는 실제로 부품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A사는 가처분 신청을 취하하고 법률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해 줬다.
B사는 2019년 1월 A사에 정산금과 투자 비용, 손실보상금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면서 다시 부품 공급을 지연했다. 생산에 차질이 생긴 A사는 결국 B사에 24억원을 지급하고 금형을 반환받고 B사를 상대로 어떠한 민형사상 소송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같은 해 6월 A사는 합의 내용이 불공정하고, B사 측 협박에 의한 합의란 이유 등으로 부당하게 취득한 돈을 돌려 달라면서 B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법원은 양사가 맺은 합의가 적법하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단해 A사 측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대법원은 "위법한 해악의 고지로 말미암은 강박에 의한 의사 표시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민법 110조 1항은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 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B사 측이 부품 공급을 지연하거나 중단했고, 그로 인해 A사가 정산금 세부 내역을 검토하지 못한 채 이 사건 합의를 통해 B사에 합의금을 지급하고 가처분이나 민형사 소송 등 정당한 권리 행사를 포기하며 막대한 손해배상액까지 지급하기로 약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가 부적법하다고 각하한 1심 판결을 취소하는 경우에는 항소법원은 사건을 1심 법원에 환송해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418조에 따라 사건을 1심인 수원지법 안산지원으로 돌려보냈다.
한편 검찰은 A사를 협박한 B사 대표를 특정경제범죄법 위반(공갈) 혐의로 기소했다. B사 대표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은 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