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외교 수장들이 26일 부산에서 회동해 3국 간 협력을 조속히 복원하고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3국 외교 수장들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3국 정상회의를 가장 이른 시일 내에 개최할 것을 확인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28일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결정을 앞두고 일본 측이 부산 지지에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무상,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오후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열린 제10회 '한·일·중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했다. 가미카와 외무상은 지난 9월 취임 후 첫 방한이며 왕 부장은 2021년 이후 2년 2개월여 만에 방한했다.
2008년 일본 후쿠오카부터 시작된 한·일·중 정상회의 역시 2018년 12월 중국 청두를 끝으로 멈춘 상태다. 개최 순서는 일본→중국→한국 순이며 우리 정부는 내년 개최를 양국에 타진하고 있다.
박 장관은 회의 모두 발언에서 "한·일·중 협력이 복원과 정상화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중 정상회의 조속 개최 △6대 협력 분야(인적 교류‧과학기술 협력과 디지털 전환‧지속 가능 개발과 기후변화‧보건과 고령화 문제‧경제 통상 협력‧평화 안보) 증진 △동북아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안정에 기여 등을 제안했다.
가미카와 외무상은 "우리 세 나라는 지역 내 평화와 번영에 큰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왕 부장 역시 "3국 간 협력은 커다란 잠재력을 보여줬다"면서 "세계 경제가 복잡한 과제에 직면한 시점에 중·한·일은 더욱 진지한 자세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에서는 박 장관이 언급한 6대 협력 분야와 함께 북한 문제 등 한반도 정세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와 일본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 중국에 건설적 역할을 요청했고, 중국 측은 '한반도 상황 안정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겠다'는 원칙적인 방침을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회의가 끝난 뒤 3국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과 만찬은 왕 부장 불참으로 불발됐다. 중국 측은 '별도 일정'을 이유로 들었다. 3국 장관은 회의 전 오찬을 함께했다. 이로 인해 3국 외교 수장들 간 합의문 등 구체적인 성과물은 도출하지 못했지만 각국 장관들은 3국 협력 강화라는 대원칙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논의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찬에 앞서 한‧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진행됐다. 박 장관은 가미카와 외무상과 약 85분간 회담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승소 판결 등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일본 정부는 해당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한국 정부에 다시 전달했고 박 장관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서 존중한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뜻이다.
한‧일 장관회담은 당초 예정된 1시간보다 25분 더 진행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쟁점이 돌출돼 서로 공방을 벌인 것이 아니라 제반 사안에 대한 협력 평가와 나아갈 방향을 조목조목 말하다 보니 초과된 것"이라며 "논박 등은 없었다"고 전했다.
박 장관과 왕 부장 간 한‧중 장관 회담은 순차 통역을 거쳐 2시간가량 이어졌다. 박 장관은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북‧러 협력 등 한반도 문제를 폭넓게 거론하며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나오는 것이 양국 공동 이익에 해당하는 만큼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왕 부장은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중국이 상황 안정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왕 부장은 박 장관을 중국으로 공식 초청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도 이뤄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측이 고위급 교류에 대한 중요성에 공감대가 있고 계속 소통해 나가고 있다"며 "그 맥락에서 이 부분도 서로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 장관은 가미카와 외무상과 왕 부장에게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지를 당부했다. 일본 측은 공식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진 않았지만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국 지지 방침을 굳혔고 이날 회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왕 부장은 '진지하게 고려하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