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을 국빈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국 의회 의사당이 있는 웨스트민스터궁에서 '도전을 기회로 바꿔 줄 양국의 우정'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실시했다. 이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우선 양국이 1883년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이래 선교사들이 한국의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는 데 헌신하고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독립운동에 기여한 점을 평가했다.
또 1950년 6‧25 전쟁에서 영국이 세계 두 번째로 많은 8만여명의 군대를 파견했고, 글로스터 1대대는 임진강 설마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점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아리랑을 즐겨 부르는 글로스터 1대대 출신 콜린 태커리 옹에게 직접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연설 후반부는 양국 관계 미래에 대한 제언에 집중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해 "계속 밀려오는 새로운 도전에 양국이 긴밀히 연대해 응전하자"며 △우크라이나 전쟁·중동 정세·북핵 위협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 위기 같은 지경학적 리스크 △기후위기·디지털 격차 같은 글로벌 현안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윈스턴 처칠 전 수상의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는 말을 인용해 "책임감을 가지고 양국이 국제 사회의 자유와 평화, 번영을 증진하는 데 힘을 모으자"고 했다. 또 영국이 비틀스와 퀸, 해리포터와 베컴을 가진 나라라면 한국은 BTS와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과 손흥민을 가진 나라라면서 양국의 문화‧인적 교류 활성화도 제안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영국이 우리와 피로 맺어진 혈맹임을 재확인하고, 한‧영 관계의 과거·현재·미래를 조망함으로써 미래 한·영 관계의 지향점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며 윤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부터 영국 국빈 순방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윤 대통령은 찰스 3세 국왕이 지난 5월 대관식 후 초청한 첫 번째 국빈으로, 영국 왕실은 통상 1년에 두 번 국빈을 맞이한다.
이날 일정은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윤 대통령 부부의 숙소로 찾아와 마중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두 부부는 환담을 나누고 영국 왕실 전용 차량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을 타고 함께 공식 환영식장인 호스가즈(Horse Guards) 광장으로 이동했다.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은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벤틀리가 2002년 제작한 차량으로, 엘리자베스 여왕과 찰스 3세 국왕에게 납품해 세계에 단 두 대만 있는 차량이다. 영국 왕실 측은 윤 대통령의 런던 도착 직후부터 이 차량을 제공했다.
공식 환영식장에서 대기하던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가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맞이했다. 찰스 3세 국왕은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 영국 왕실과 정부 주요 인사를 소개했고, 윤 대통령은 수낵 총리와 악수하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이어 왕실 근위대 사열이 이뤄졌다. 아리랑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윤 대통령과 찰스 3세 국왕이 함께 근위대를 사열했고 예포 41발이 발사됐다.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외빈석 맨 앞줄에 앉은 모습도 보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윌리엄 왕세자,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 부부와 함께 세 번째 마차에 탑승했다. 박진 외교부·이상민 행정안전부·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윤여철 주영국대사, 김태효 안보실 1차장·김은혜 홍보수석, 최상목 경제수석 등은 각각 4∼7번째 마차에 단체로 탑승했다.
왕실 기마 부대의 호위 속에 마차는 국빈 오찬 장소인 버킹엄궁으로 이어지는 더몰 거리 1.6㎞가량을 이동했다. 거리에는 태극기와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이 걸렸고, 애국가도 연주됐다.
국빈 오찬은 버킹엄궁에서 소규모로 개최됐다. 윤 대통령과 찰스 3세 국왕은 오찬 이후 훈장과 선물을 교환하고 버킹엄궁 픽처 갤러리에 전시된 한국 관련 소장품들을 함께 관람했다. 고종이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낸 편지와 휴대용 화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 당시 선물 받은 청자꽃병과 안동 하회탈 등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영국 국방부 앞 한국전 참전 기념비로 이동해 헌화했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에도 헌화했다.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영어로 "자유와 정의를 향한 당신의 헌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