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과학기술 혁신은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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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사진=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 개발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 우리 헌법 제127조 내용이다. 당연하게도 대통령은 이러한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그래서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는 취임 선서를 한다. 

대통령은 헌법 수호 의무를 지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언행을 할 수 없다.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하면 대표적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 형사상 책임도 진다. 대통령의 선서는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헌법적인 서약이다. 여권 인사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헌법 교수 시절 저서 <헌법학원론>에서 한 설명이다. 

과학기술을 혁신하고 이를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노력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다. 우리 헌법은 이미 1962년 5차 개정에서부터 과학 진흥을 국민경제 발전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고 그에 대한 대통령의 책무를 정했다(제118조).

당시 박정희 정권은 ‘헌법 개정안 제안이유서’에서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고 국민경제의 조속한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그중 하나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과학 진흥을 한다는 규정이다. 그 취지가 계속 이어져 현행 헌법에까지 이르렀다. 

국민경제 발전은 인간의 존엄성을 비롯한 모든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바탕이다. 굳이 헌법 규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가가 과학기술의 진흥과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명제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의 정책은 그 책무를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정부는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안을 올해 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의 ‘나눠 먹기식 관행을 혁파하고 31조원 규모의 R&D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하라는 지시다.

그러나 발언 이후로 3개월이 지났지만 ‘나눠 먹기식 관행’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국정감사에서도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회에 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근거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나눠 먹기식 관행’이 확인된 예산만 삭감하지 않고 연구개발 예산을 전체적으로 삭감하였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할 만큼 중대한 ‘나눠 먹기식 관행’이 도대체 어디에서 얼마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답이 없다. 이번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 얼마나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지 양대 국제 과학 전문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도 최근 국내 과학자들의 당혹감을 전하는 보도를 하였다.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 외에도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 완화, 저출생 개선, 지역소멸 대응 등 우리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필요한 예산들을 줄줄이 삭감했다. 일부 정책은 더 이상 시행이 불가능한 정도가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편에서는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 것을 공언했던 것이기에 그 당혹감은 연구개발 예산 삭감 못지않게 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산이 삭감된 분야의 피해가 해당 연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서 정부의 정책 변화나 정권 교체에 의해 그 피해가 회복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피해는 당해 연도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 후퇴로 이어져 영구적인 피해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이번 예산 삭감 조치 이후 연구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린다거나 장기 연구계획이 불가능하고, 이미 진행 중이던 연구개발 사업들도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전해지고 있다. 분야마다 차이가 있으나 우리와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는 2년, 조선산업 기술 격차도 2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산업 전체적으로는 1년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그 1~2년의 기술 격차를 바탕으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연구개발이 1년 멈추면 그 피해가 1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년 연구개발을 멈추면 그 산업 분야는 중국 등 경쟁국에 대해 경쟁력 우위가 사라지고 오히려 역전될 수도 있는 시간이다.

만약 내년 예산의 기조가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내 이어지면 그 기간 동안 우리의 과학기술 발전은 멈출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현재의 지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경쟁국 대비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4년의 후퇴는 시장에서 도태되고 남을 수준일 수 있다. 4년이면 우리가 다시 후진국으로 돌아가는 데 충분할지 모를 시간이다. 

그래서 과학기술 혁신은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다. 단 하루도 게을리하거나 방기해서는 안 되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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