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권의 급격한 예금금리 인상 등 과도한 수신 경쟁을 막기 위해 은행채 발행 한도를 폐지했지만, 오히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면 시차를 두고 은행권 예금과 대출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어 은행권 수신 경쟁을 막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어서다. 더구나 우량 채권으로 평가받는 은행채 발행량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로는 자금이 몰리지 않아 기업들의 자금난을 더 심화 시킬 수 있다.
3일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를 전면 폐지했지만, 이번 조치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행보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상 은행채 발행 증가는 은행채 금리를 기준으로 삼는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는 등 시장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후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달 27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4.240∼7.123%로, 금리 상단이 7%를 넘어섰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도 4%대로 올라섰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19개 은행 정기예금 상품 가운데 최고 우대금리가 4%를 넘는 상품은 KB국민은행 'KB Star 정기예금(4.05%)', 우리은행 'WON플러스예금(4.05%)',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4.03%)' 등 10여 개에 달한다.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가 종국엔 대출·예금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말 은행권이 판매한 고금리 예·적금 상품의 만기 수신 규모가 내년 초까지 100조원에 달해 은행채 발행 규제 폐지만으로 수신 경쟁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이 총 18조9000억원임을 감안하면, 5배가량의 수신 규모를 단순 은행채만으로 커버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은행권이 글로벌 긴축 장기화 전망과 은행채 금리 상승 등을 이유로 들며 대출·예금 금리 인상을 통한 자금조달 병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은행채 발행이 늘며 채권시장에 '수급 쏠림'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당국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우량채인 은행채 발행 증가로 일반 회사채 등의 소외가 극심해질 것을 우려, 은행채 발행을 중단시킨 바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우량 은행채 발행이 늘면 상대적으로 신용 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지난해 이를 우려해 당국이 은행채 발행을 중단시킨 바 있는데, 이번에 다시 해당 규제를 풀어버리면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 속, 시장의 혼란이 또다시 가중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