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리스크'에 커지는 불확실성

2023-09-20 06:00
  • 글자크기 설정
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5일 미국 국무부에서 열린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과 공동기자회견에서 리상푸(李尙福) 중국 국방부장 거취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블링컨의 대답은 “아는 바 없으며, 우리는 그동안도 그래왔듯이 어느 시점에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지 중국 정부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었다. 리상푸 국방부장은 지난달 29일 중국과 아프리카 평화안보 포럼에서 기조연설한 이후 공식 석상에서 보이지 않고, 지난 7일 베트남과 개최할 예정이던 국방협력회의는 리 부장 건강을 이유로 연기됐다. 이에 관한 질문을 받은 미국 국무장관이 “아는 바 없다”고 대답함으로써 중국 국방부장 실종설을 뒷받침한 셈이 된 것이다.
친강(秦剛) 외교부장에 이어 리상푸 국방부장까지 실종? 현직 중국 외교부장 친강의 신변 이상을 처음 확인한 것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었다. 박 장관은 지난 7월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ASEAN) 외교장관 회의(ARF)에서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만났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7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박진 장관과 왕이 정치국원 겸 외교부장 사이에 화상회담으로, 그보다 4개월 전인 8월 9일에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근교에서 대면(對面)으로 이뤄졌다. 화상회담이 아니라 직접 대면한 것은 이번이 근 1년 만이다.
문제는 회담 내용보다 박진 장관의 카운터파트가 친강 현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어야 하는데 친강이 아니라 더 고위급인 왕이 정치국원이 나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중국 측이 갑자기 아세안 외교부장 회의를 격상시킬 의사를 가졌다거나 한국을 더욱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고위급이 나타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장 친강의 신상에 이상이 생겼다는 점이 관찰 대상이라는 것이다. 중국 측은 박진 장관에게는 “친강 외교부장 건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중국 외교부장 신상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은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외교부장 활동’에도 나타나 있다. 전 세계를 상대해야 하는 중국 외교부장의 ‘활동’ 소식은 지난 6월 25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러시아 외교차관 루덴코 안드레이 유레비치를 만난 데서 멈춰 서 있다. 이날 베이징을 방문한 또 다른 손님인 베트남 총리 팜민찐을 만나 회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9월 18일 현재까지 3개월 가까이 행적이 보이지 않고 있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친강의 부재를 묻는 질문에 “제공할 정보가 없다”고만 답해왔다.
중국이라는 자칭 ‘대국(大國)’의 외교부장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호사(好事)를 만난 대만 유튜버들은 난리가 났다. “홍콩 봉황TV 여성 뉴스 앵커 푸샤오톈(傅曉田·40)도 동시에 사라졌다” “케임브리지 출신에 미모인 푸샤오톈이 미국에서 주미대사를 하던 친강의 아기를 낳았다” “남녀 문제가 아닐 것이다. ··· 외교지휘권을 놓고 정치국원 왕이와 권력투쟁을 벌이다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드라이브하는 반부패 캠페인에 걸려든 것이다” ··· 대만 유튜버들은 최고의 화제를 만나 온갖 설(說)을 쏟아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제공할 정보가 없다”는 말만 했고 심지어는 “신화통신을 보라”는 말을 해 베이징 주재 외국 특파원들의 실소(失笑)를 샀다. 베이징 주재 외국 특파원들은 “외교부 대변인이 아무 말을 못하는 걸 보면 친강 외교부장 실종에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이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추측을 중국 외부로 전했다.
중국 장관들의 실종 뉴스가 나오는 가운데 중국 경제에 관한 비관적 뉴스들이 미국의 권위 있는 매체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 기적의 종말(The End of China’s Economic Miracle).” 지난달 2일 출판된 포린 어페어즈 9·10월호에는 미국 PIIE(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을 10년째 하고 있는 애덤 포즌(Adam Posen) 기고문이 실렸다. “중국은 시진핑 등 지도부의 억압적인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인 장기 코로나’를 겪고 있으며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시작된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욱 심해져 민간 분야의 신뢰가 위축돼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체제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탄압하는 등 공산당 정권을 위협할 시장의 성장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경제 혁신이 억압돼 새로운 경제 동력이 생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포즌 소장은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에서 중국의 이런 위기를 활용해 우위에 서야 할 기회”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 8월 26일자에는 “중국 경제의 문제는 ‘Top(시진핑)’에서 시작된다”는 에스워 프라사드(Eswar Prasad) 커넬대 다이슨(Dyson) 연구소 교수의 게스트 칼럼이 커다랗게 실렸다. 프라사드 교수는 “중국은 지금이 위험한 순간(perilous moment)이며 각종 수치들은 중국 경제의 시동이 꺼지고(stalling)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 소비자들과 기업인들이 중국 정부가 중국 경제에 깊이 자리 잡은 문제를 인지하고 고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신뢰 상실의 문제가 퍼져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프라사드 교수는 “시진핑 정부가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이미 나선형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중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라사드 교수는 최근 중국 여행을 통해 중국 정부와 기업 사이에 발생한 불협화음을 분명하게 느꼈으며 베이징 관리들은 자신들이 “구름 위에서 살고 있다(live above the clouds)”는 사실이 기업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시진핑이 2021년에 도입한 ‘common prosperity(공동부유·共同富裕)’라는 정책 목표가 민간기업과 정부 관리들에게 ‘몽둥이질(cudgel)’을 해서 중국 공산당 노선을 따르라는 말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는 가운데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이자율을 낮춰 시중에 자금을 풀어도 미래를 걱정하는 가계와 기업의 소비로는 연결되지 않고 있어 점점 나선형 디플레이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가고 있다고 프라사드 교수는 진단했다.
중국에서 국가지도자급 인물이 돌연 종적을 감추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11년 전인 2012년 9월 5일에는 베이징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카운터파트였던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나타나지 않아 전 세계에 미스터리를 제공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방문해서 중국 국가부주석, 그것도 그해 가을 제18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당 최고지도자인 총서기에 선출될 예정이던 시진핑과 만나 회담하기로 돼 있었는데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시진핑은 열흘이 지난 9월 15일 베이징에 있는 중국농업대학 과학대중화 행사에 나타났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함으로써 열흘간의 미스터리는 풀렸다. 시진핑 실종 기간 중국 인터넷 검색엔진들은 중국어로 시진핑이라고 치면 ‘검색불가’만을 답으로 내놓아 미스터리를 더욱 증폭시켰다.
실종됐던 시진핑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열흘 만에 공개 행사에 나타났고 그해 가을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된 뒤 5년 임기를 두 번 하고 지난해 10월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1976년 죽은 뒤에는 처음으로 3연임 당총서기로 선출돼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독재자라는 말을 듣고 있다.
시진핑뿐만 아니라 중국 경제계 거물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3년 반 전인 2020년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경제금융회의에서 중국 공산당 최고 경제 지휘자 왕치산(王岐山)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 금융시스템은 과거 전당포 수준”이라고 할 말 다했다가 실종 상태에 빠졌다. 마윈은 최근 들어서야 알리바바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일본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고위 지도자들과 관리들이 갑자기 실종되는 미스터리의 배후에는 중국 공산당 기율검사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다고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은 말한다. 당 안팎에 문제가 생기면 기율검사위가 전화를 걸어 출두 장소를 알려주면 중국에서 아무리 높은 고위 지도자도 출두해서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채 2주일이건 3주일이건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율검사위의 무소불위 권력은 이 위원회가 1억명에 가까운 당원들의 당원 자격을 박탈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당원 자격을 박탈당하면 장관이든 부주석이든 현직은 자동적으로 면직당하고, 당원 자격을 박탈당한 중국 공산당원은 어디에서도 급여를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 굶어죽을 지경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기율심사위원회가 깨닫지 못하는 점은 자신들은 중국 고위 지도자들을 비밀장소로 호출해서 조사하는 작업이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 시진핑 당총서기의 리스크로 연결된다는 점을 모른다는 점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