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독립운동지를 가다] 상하이 곳곳 서린 독립운동가 발자취...유적지 보호 적극 힘써야

2023-08-2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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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청사, 훙커우공원, 영경방 10호 등...

김구 선생이 윤봉길과 시계 교환한 집…

개관 30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등

중국내 韓독립운동 유적지 보호해야

탐방단이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앞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25일 탐방단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비닐 덧신도 사라지고, 기념품 매장도 문을 닫았네요.”

지난 25일 상하이 독립운동지 탐방단은 상하이 황푸구 마당로 306농 4호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를 방문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찾은 것이다. 그사이 청사 보존을 위해 방문객 신발에 씌웠던 비닐 덧신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품 매장도 자취를 감췄다. 
청사는 후미진 골목 안에 자리하고 있다. 골목 집마다 만국기처럼 이불과 빨래가 나부끼던 광경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주변에 살던 주민들이 대부분 이주했기 때문이다. 폐허가 된 집 대문에는 ‘○○○○년 ○월 ○일 봉쇄’ 딱지와 함께 '내부 철거로 위험하니 진입을 금지한다'는 통지문이 붙어 있다. 봉쇄 날짜는 대부분 2022~2023년으로 철거는 최근에 이뤄진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은 임시정부 청사 유적지는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곳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나기 직전까지 사용한 청사다. 탐방단은 1층 회의실·부엌부터 2층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원 집무실, 3층 요인 숙소·전시관까지 차례로 둘러봤다. 허름한 건물과 초라한 집무실에 탐방단 표정도 숙연해졌다. 

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는 도심 중심부에 위치해 신천지(新天地) 등 대형 쇼핑몰로 둘러싸여 있다. 임시정부 청사 옆 고급 아파트 가격이 평당 1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땅값이 비싼 지역이다. 과거 상하이 도심 재개발 당시 임시정부 청사가 헐릴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중 양국 정부가 소통해서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현장을 가다'의 저자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사실 중국 정부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보존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며 “앞으로도 한·중 양국 정부 간 소통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기업·단체들이 지원해 청사 보존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중국 25개 성·시·자치구에 걸쳐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가 373곳 있다. 이러한 중국 내 유적지 보호를 위해서는 한·중 외교관계도 중요하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상하이 루쉰공원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 기념관 사진배인선 기자
상하이 루쉰공원 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 윤봉길 의사의 호를 따서 '매헌(梅軒)'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25일 상하이 루쉰공원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은 탐방단이 윤봉길 의사 흉상 앞에 헌화 후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25일 상하이 루쉰공원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은 탐방단이 윤봉길 의사 흉상 앞에 헌화 후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탐방단이 방문한 상하이 루쉰공원(구 훙커우공원) 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도 한·중 정부 노력이 묻어나는 유적지 중 하나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는 훙커우공원에서 물통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장교를 사살하는 등 일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이곳에는 그날의 의거를 기념해 윤봉길 의사 호인 ‘매헌(梅軒)’을 따서 지은 ‘매정(梅亭)’이라는 정자가 세워지고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꾸며졌다. 특히 2009년 상하이시 정부 협조로 정자 현판 '매정'을 윤 의사 호를 그대로 딴 ‘매헌(梅軒)’으로 개칭했는데 이는 한·중 관계 우호를 바탕으로 이뤄진 성과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탐방단은 윤봉길 의사가 의거 당일 아침 김구 선생과 마지막 식사를 한 장소로 추정되는 '김해산(임시의정원 의원)의 집'도 찾아갔다. 상하이시 황푸구 옌당로에 위치한 원창리(元昌里) 13호다. 김구 선생은 ‘백범 일지’에서 김해산의 집에서 윤봉길 의사와 의거 당일 아침 시계를 교환했다고 전했다. 

황푸구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된 원창리 골목은 낡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여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골목에 들어가자 바로 오른쪽 옆집 대문 앞에 ‘元昌里 13號’ 주소와 함께 ‘김해산 거주지’라는 한글 현판이 눈에 띈다. 2020년 8월 상하이 한국학교 소속 '대한민국 청소년 외교단 동아리'에서 붙였다고 적혀 있다. 
상하이 원창리 13호
'김해산의 집'으로 추정되는 상하이 황푸구 옌당로의 원창리(元昌里) 13호. 백범일지에 따르면 윤봉길 의사 의거 당일 김구 선생은 김해산의 집에서 윤봉길 의사와 만나 시계를 교환했다.  원창리 13호 대문 앞 오른편에는 정확한 역사적 고증도 없이 ‘김해산 거주지’라는 현판이 붙어져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박환 교수는 “원창리 13호는 2019년 우리나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등장해 독립운동 유적지로 유명해졌다”며 “하지만 현 주소가 과거와 일치하다는 정확한 역사적 고증이 뒷받침되지 않아 독립기념관 독립사적지 목록에도 아직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확실한 역사적 고증도 없이 민간단체에서 이곳을 '김해산 거주지'라고 특정해 현판까지 붙인 것은 다소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상하이 시내에는 임시정부 독립 지사들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임시정부 청사에서 몇 걸음만 더 가면 임정 요인 숙소가 있었던 ‘영경방(永慶坊)’ 골목이 나온다. 현재는 광둥요리집, 피부미용숍 등이 영업 중이다. 바로 이곳 어딘가에는 김구 선생이 거주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영경방 10호’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은 김구 선생이 부인 최준례 여사를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보낸 가슴 아픈 장소로도 알려졌다.

최기목 푸단대 대외한어과 학생은 “그동안 중국 경제 도시로만 알고 있던 상하이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지로서, 독립운동가의 항일독립 투쟁지로서 우리에게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도시로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며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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