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산업보조금 제도] 혈세로 조성한 보조금 중국 기업 손아귀···중국산 급속충전기 안방 시장 잠식

2023-08-15 20:24
  • 글자크기 설정
국내 친환경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혈세로 조성된 보조금이 중국 기업에 고스란히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가 지난해 설치한 전기차 급속충전기 모두 중국산 핵심 부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실상 보조금이 중국 기업에 흘러 들어가고 있다. 또 중국산 전기버스와 상용차들이 국내 보조금 제도를 이용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15일 아주경제가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환경부가 지난해 환경공단과 조달청을 통해 발주한 전기차 공용 급속충전기 1140기 모두 중국산 충전전원장치(파워모듈)를 탑재한 제품이었다.

파워모듈은 교류를 직류로 변환하는 장치로 충전기 가격에서 42~53%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대다수 국산 부품을 쓰더라도 파워모듈이 외산이면 '한국산'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정도다.

국내에 설치된 급속충전기 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자에게 환경부는 보조금을 지원한다. 급속충전기 용량에 따라 350킬로와트(㎾) 이상 초급속 충전기는 한 기당 최대 7500만원, 200㎾ 충전기는 최대 400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이 들어간 전기차 충전 인프라로 인해 실제 수혜는 중국 업체가 보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커지는 이유다. 올해 책정된 환경부 충전기 보급 예산은 2925억원인데 그중 상당액이 사실상 핵심 부품을 만드는 중국 업체에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용 급속충전기 발주 시 최저가 입찰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값싼 중국산이 판칠 수밖에 없다고 국내 충전기 업체들은 주장한다. SK시그넷 등 대기업은 정부 사업에서 아예 손을 뗀 상태다. 자체 기술로 고도화한 파워모듈 등 부품을 사용해 중국 제품보다 성능이 좋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제품이 정부 보조금을 쓸어가는 일은 전기차 업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기준은 5700만원 미만이다. 가격 상한선을 정한 건 고가 외산 전기차에 보조금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테슬라 모델Y, 지리자동차 쎄아, 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 토레스 등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가성비 모델들이 속속 출시되면서다.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한국산 삼원계 배터리보다 가격이 저렴해 보조금 상한선 아래로 가격이 형성됐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이다. 결국 국내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직간접적인 수혜는 중국계 업체가 보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 원가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내 배터리 제조사 입지만 좁아지게 된 상황이다.

전기버스·상용차 시장에서는 중국산 제품이 보조금을 대거 챙겨가고 있다. 지난해 총 2074대가 보급된 전기버스 중 44%인 913대가 중국산으로 파악됐다.

친환경차에 대한 글로벌 주요국 보조금 지급 정책을 살펴보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산에 큰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미국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최근에 '바이 아메리칸법(BAA·Buy American  Act)' 세부 규정을 내놓으면서 외산 충전기에도 빗장을 걸었다.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으려면 전기차 충전기 외관을 미국산 강철로 제작해야 하고 최종 조립도 미국에서 해야 한다. 또 2024년 7월부터는 충전기에 들어가는 총 부품 중 55% 이상을 미국산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일본도 해외 기업 전기차 충전기에 대해 일본자동차연구소(JARI)에서 인증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JARI 인증은 일본 법인이나 컨소시엄 내 일본 법인이 없으면 인증을 받을 수 없다.

반면 국내 정부는 최근에야 중국산에 보조금이 쏠리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를 수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기 핵심 부품에 대한 국산화 노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업계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진임실군
임실군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시설. [사진=전라북도 임실군]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