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면서 한국 사회를 뒤흔들며 한·중 관계는 더욱 냉각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하기 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면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언급은 한·중 관계 악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싱 대사 발언을 정치권이 정쟁화∙이슈화하면서 한·중 관계를 살얼음판 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주재국 대사로서 부적절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당연히 우리 외교부가 항의와 주의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는 등 정치권의 발언과 주장은 한·중 관계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로서 우리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이 이란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 ’남북 관계도 미국과 협의가 필요하다‘ 등 무례한 발언을 했을 때도 대사 추방설은 나오지 않았다. 또한 2021년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 총괄공사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성적 비하 발언을 했을 당시에도 ’페르소나 논 그라타[(PNG·외교상 기피 인물)‘로 지정하지 않았다. 외국 공사가 다른 국가 원수를 모욕한 전례 없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모두 일본 정부에 사과를 강력히 촉구했지만 지금처럼 대사의 강제 추방 조치를 정치화하지는 않았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에 친미탈중(親美脫中)의 굴곡되고 편향된 정서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점차 심해져가는 국내 반중 여론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미국 US뉴스&월드리포트가 발표한 '2022년 세계 국력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6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리더 역량, 경제·정치적 영향력, 외교정책, 군사력 등 평균 점수를 산정해 세계 국력 순위를 정하는데 한국이 프랑스(7위)와 일본(8위)을 제치고 세계 6위로 성장한 것이다. 영역별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수출 역량(84점) △경제적 영향력(79.8점) △군사력(63.7점) △국제외교(66.4점) △정치적 영향력(48.6점) △리더 역량(22.5점) 순이다. 결국 수출 및 경제적 영향력이 지금의 우리 국력을 만든 것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지난 30년간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한국 경제가 동반 성장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 정치적 영향력과 리더 역량을 보면 우리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중 관계 회복을 위한 첫 단계는 국익에 근거해 미·중의 전략적 균형자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 국력이 민주사회의 기반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장이라는 바탕 위에 만들어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싱 대사를 접견했을 때 ‘한·중 관계는 상호 중요한 교역 파트너로서 향후 한·중 관계가 더 발전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윤 당선인과 전화통화하면서 ‘중·한 관계는 이사할 수 없는 영원한 이웃이자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념과 체제가 서로 다른 양국 간 협력의 기초는 결국 양국 경제협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외교안보 이슈가 한·중 간 경제협력을 모두 집어삼키도록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선 더욱 그렇다.
유럽이나 일본 등 기타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들은 가치외교와 실익외교를 철저히 구분해 중국과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정부 부처별로 좀 더 적극적으로 중국과 소통하고, 양국 교류 확대를 위한 물밑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대통령 특사 파견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상호 오해와 냉각된 한·중 관계를 복원하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한·중 간 감정의 흉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박승찬 필자 주요 이력
△중국 칭화대 박사 △전 주중 대사관 경제통상전문관,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