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3]③ 걷기 좋아 '놀다가길', 험한 길은 '이겨내길'...공모로 탄생한 우리 길

2023-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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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숲체원·국립산림치유원, 걷기길·시설물에 우리 이름 공모

걷기길·시설물에 우리 이름 공모…가온·나온·다온·라온마을 선정

산책·등산로도 우리말…기억하길·숲친구길 등 난이도별로 이름 지어

프로당구협회도 '우리말 응원주간'…당구용어 순화·응원문화 홍보

수많은 외국어 이름들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당당함을 뽐내는 우리말 시설물이 춘천 국립숲체원에 있다. 문탠로드, 블루로드···. 걷기길 이름에도 넘쳐나는 '외국어' 파도 속에서 당당히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는 이름들이다. 

우리말 사용 사례는 비단 춘천숲체원에 자리한 시설물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로당구협회도 활발하게 당구용어를 우리말로 바꿔 부르고 있다. 협회는 최근 외국어로 된 당구용어를 한글화하고 우리말 응원 시상식까지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놀다가길' '숲친구길' '이겨내길' 등 국립춘천숲체원에 조성된 걷기길. [사진=기수정 기자]

◆기억하길·이겨내길···직원 공모로 탄생한 우리말 길 이름 
강원 춘천 국립숲체원. 들어서는 순간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숲체원 곳곳을 연결하는 '길 이름'이다. 기억하길, 이겨내길, 숲친구길···. 국립숲체원 곳곳에 조성된 걷기길 이름이다.

'○○로드'로 대변되는 많은 걷기길 속에서 더 빛이 나는 이유는 비단 이곳이 우리말로 지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 길 이름이 바로 직원 공모를 통해 탄생했다는 점이 놀랍다. 
 

우리말로 지어진 국립춘천숲체원 마을 이름. [사진=기수정 기자]

국립춘천숲체원뿐 아니라 국립산림치유원을 비롯한 소속 기관 시설물 이름들 또한 ‘우리말’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국립산림치유원 숙박시설은 ‘별빛동’ ‘달빛동’ ‘풀잎동’ 등 우리말로 이름 붙였다. 치유숲길 이름 역시 ‘별바라기’ ‘마실’ 등 우리말을 활용했다. 

국립장성숲체원 숲길 이름도 특색 있다. ‘새소리숲길’ ‘재잘재잘숲길’ ‘하늘숲길’ ‘맨발숲길’ 등 우리말이고, 국립청도숲체원 숲길은 ‘나눔의길’ ‘배움의길’ 등 알기 쉽게 지었다. 교육시설 이름 또한 하늘뜰(잔디운동장), 꿈마당, 애벌레놀이터 등 정감 있는 우리말을 활용했다. 그 밖에 많은 숲체원이 ‘우리말’로 이름을 지은 시설물을 운영 중이다. 

국립춘천숲체원도 준공 후인 2020년 7월 직원 12명을 대상으로 시설물(마을·관·집) 명칭을 공모했다. 

그 결과 가온마을(맞이관·아침못마당·어울림관)과 나래마을(누리관·소담관), 다온마을(숲속집·별빛집·달빛집·숲친구길 등), 라온마을(놀이숲·배려숲·모험숲 등)이 시설물 명칭으로 최종 선정됐다. 

가온은 ‘가운데’라는 뜻이다. 고객들을 만나는 중심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탄생했다. 나래는 ‘날개’라는 뜻이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몸소 실천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지었다. 

다온은 ‘좋은 일들이 다 온다’는 뜻이다. 머무는 고객이 숲체원 경험을 통해 행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고 한다. 

라온은 ‘즐거운’이라는 뜻이다. 숲체원 체험시설을 경험하고 즐거운 추억을 가져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직원들 바람이 담겼다. 
 

눈길을 끄는 국립춘천숲체원 걷기길 이름들. [사진=기수정 기자]

시설물 명칭 공모 후에는 ‘산책길’ 공모도 진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기억하길’ ‘이겨내길’ 등 걷기길이다. 

길 이름에서 산책·등산로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숲체원에 조성된 산책·등산로는 6개 경로다. 총 길이 3.58㎞에 달하는 길은 각각 길이가 180~960m로 다양하다. 난이도는 상·중·하, 그리고 최상으로 구분됐다.

난이도 '하'는 놀다가길과 숲친구길이다. 놀다가길은 '숲속을 걸으며 다양한 체험을 통해 마음 편히 놀다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 총 길이 460m지만 이 길을 전부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에 불과하다. 

숲친구길은 180m에 나무바닥으로 조성된 산책로다. 무장애길이다. 장애인과 친구처럼 동행한다는 뜻을 담았다.

460m짜리 산책로인 '놀다가길'은 계곡을 옆에 끼고 있어 걷기 좋다. 가장 긴 노선인 960m짜리 '기억하길'은 난이도 '상'이다. 산악 마라톤을 즐기기에 제격이라고 하는 이 길을 걷는 데는 약 40분 걸린다. 

이 밖에 820m짜리 걷기길은 '함께하길', 700m에 달하는 '건강하길'도 난이도 '중'이다. 

이곳 숲체원에서 가장 험난한 길로 손꼽히는 길은 '이겨내길'이다. 길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길 난이도는 '최상'이다.

난이도가 가장 높은 숲길을 걸으며 삶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용기와 자신감을 기르자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  

국립춘천숲체원 관계자는 "개관 후 시설물 이름과 산책길·등산로 이름을 정해야 했다. 직원 공모를 진행했고 기억하길·이겨내길처럼 신선하면서도 정감 있는 이름들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우리말 응원 주간' 으뜸상을 수상한 크라운해태 라온. [사진=PBA]

◆ 프로당구도 우리말 사용 활발···'파이팅' 대신 우리말 "아리아리"

프로스포츠 중 우리말 사용에 앞장서는 종목은 당구다. 당구 중에서도 프로당구협회(PBA)에서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19년 출범한 PBA는 당구용어 순화에 힘쓰고 있다. 매년 'PBA 당구용어'를 발표하고 있다. 발표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 당구장에 포스터를 배포했다. 더 많은 당구인이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입소문은 동호회를 통해서 났다. 동호인들이 하나둘 우리말을 사용하더니 이제는 너도나도 당구봉을 들고 흥겹게 우리말로 대화한다.

순화는 자체적으로만 추진하지 않았다. 사단법인 국어문화연합회(이하 연합회)와 협약을 맺고 '당구용어 우리말 공모전' 등을 통해 순화 폭을 넓혔다.

공모전에는 736건이 응모했다. 1차 분류를 통해 160개 당구용어에 대해 우리말 370개가 응모했다. 가장 많이 응모한 용어는 키스(85건)다. 리버스엔드(36건)와 뱅크샷(22건)이 뒤를 이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용어가 제출됐다.

심사는 연합회 측 조언을 받았다. 용어 수, 범용성, 어법 등을 고려했다. 심사 결과 1위(으뜸상)는 '끝오름(리버스엔드)'이 차지했다. 이를 제안한 박영희씨는 "용오름처럼 끝에서 솟아오른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2위(버금상)에는 '충돌(키스)'과 '초구 가리기(뱅킹)', 3위(보람상)에는 '팽이치기(스핀볼)' '마무리 점수(세트 포인트)' '연속 득점 배치(포지션 플레이)' 등이 선정됐다.

PBA는 "차기(2023~2024) 시즌부터 공식 용어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PBA는 당구용어에 이어 응원 문화 우리말을 추진했다. 지난해 10월 엽합회와 '우리말 당구용어 및 응원 문화 퍼트리기 협약식'을 체결하면서다. 지난해 12월 한 라운드는 '우리말 응원 주간'으로 선정됐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파이팅'이나 '브라보' 대신 우리말 응원인 '아리아리' '가자' '좋아요' '그렇지' 등을 외쳤다.

특히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크라운해태 라온 선수단은 '대끼리('대길'에서 유래한 '매우 좋음'을 뜻하는 경상도 지역 방언)' '얼쑤' '지화자' 등 폭넓게 우리말 응원을 사용했다.

PBA는 6일간 우리말 사용 빈도, 창의성, 적극성 등을 평가했다. 그 결과 크라운해태 라온이 6일 중 5일간 만점을 획득하며 '우리말 응원 문화 주간' 시상식에서 으뜸상을 수상했다.

김재근 크라운해태 라온 주장은 "우리말로 응원하니 즐거움도 흥도 두 배가 됐다. 팀원들도 신 나게 응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상까지 하게 돼 정말 기쁘다. 우리말 응원 문화가 자리 잡을 것 같다.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했다.

버금상은 한국 선수들로 구성된 TS샴푸·푸라닭이, 보람상은 휴온스가 받았다.

김영진 PBA 사무총장은 "당구용어에 왜색이 짙었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출범부터 개선하기 시작했다. 연합회와 협약을 맺으며 자신감을 가졌다. 당구가 한국에 뿌리내린 지 100년 됐다. 긴 시간 동안 우리말로 순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주위에서 '어려운 일인데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초기에는 '생소하다' '생경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완벽한 것은 없다. 100% 동의는 안 되더라도 방향성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 총장은 "3쿠션은 한국이 종주국이나 다름없다. 당구장이 가장 많고, 전문 채널이 있다. 15개국 출신 선수 30여명이 한국에서 뛰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우리 것이 세계의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다른 종목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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