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3]① 페어링→맛조합, 오마카세→주방특선…어떤 게 더 듣기 좋나요

202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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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신조어 남용과 한글 파괴는 세대 간 갈등·격차 부추겨

웰빙을 '참살이'처럼 직역 수준의 우리말 변경은 오히려 거부감

널리 퍼지기 전에 대체해야 처음엔 낯설어도 금세 익숙해질 것

정부도 '새말모임' 만들어 우리말 바꿔쓰기로 국민 소통 앞장

언어는 빠르게 변화한다. 정보통신기술 발달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는 아무렇지 않게 신조어와 외국어를 남용하기에 이르렀고, 언어가 자연스레 파괴되며 세대 간 격차를 부추겼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언론은 오히려 언어 파괴에 앞장서는 모양새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표현을 새롭게 또 간결하게 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모든 국민의 이해를 돕지는 못한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2023년 6월 초에 발표한 새말들. [사진=쉬운우리말을쓰자 누리집 갈무리]

# 1. "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 중 우리말 아닌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외국어가 대부분이에요.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보도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쉽게 바꿔 쓸 수 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워낙 오랫동안 호텔업계 직원들이 사용해왔기에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도 왕왕 발생합니다." -국내 5성급 호텔에서 근무하는 김모씨-

# 2. "외국어도 그렇지만 최근 넘쳐 나는 신조어 등이 건강한 언어문화를 해친다는 것은 알겠으나 무조건 우리말로 바꿔 쓰려고만 하다 보니 무척 어색한 부분도 종종 눈에 띄더라고요. 최근 '웰빙(well-being)'을 우리말로 바꾸면 '참살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어요. 외국어를 '직역'한 수준으로만 보여서요." -국내 한 언론사 관계자 전모씨-

우리의 국어 '한글'이 한국어로 불린 지는 꽤 오래됐다. 한류 열풍을 타고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넘쳐 나면서 한글은 명실상부 세계인의 언어로 거듭난 것이다. 

외국인들은 이야기한다. "한글은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세계 역사상 전제주의 사회에서 왕이 백성(국민)을 위해 문자를 창안한 사례는 없었다. 그만큼 한글은 문자발명의 목적과 대상이 분명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한글'을 외면한다. 알기 어려운 외국어는 물론 어떤 뜻을 품었는지도 모를 신조어까지 한글의 가치를 망각한 언어 파괴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글 파괴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새말모임을 만들어 쉬운 우리말 쓰기에 앞장서고 있다. 어려운 외국어 신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새말모임은 국어 전문가 외에 외국어, 교육, 홍보·출판, 정보통신,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로, 국립국어원과 함께 새로 유입된 외국 용어를 대체하는 다듬은 말을 제공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와 언론사 기사를 매일 검토해 새로 유입된 외국 용어를 발굴하고 이들 중 공공성이 높은 외국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기 위해 정기적으로 새말모임을 개최한다. 

언론을 대상으로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도 진행한다. 외국어와 외래어, 신조어 등이 넘쳐 나는 언론사에서  쉬운 우리말 사용 기획 기사를 배포하며 스스로 우리말 쓰기 노력을 기울이도록 돕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언론사에서 내는 보도 자료와 기사 제목을 꼼꼼하게 살피고 이 중 외국어나 신조어를 발견하면 이를 우리말로 바꿔 쓰도록 요청하는 공문도 꾸준히 보내고 있다. 

새로운 외국어가 발견되면 새말모임에서 대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 후보를 고른다. 그리고 국민에게 어느 단어가 가장 적합한지 의견을 물은 후 새말을 선정해 알린다. 

공공기관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국어문화원연합회 누리집에는 "2021년과 비교해 2022년 정부 보도자료에서 1000어절당 로마자 표기 현황을 살펴본 결과 5.8회에서 4.7회로 줄었다. 외국어 사용 역시 6회에서 5.7회로 줄었다"는 개선 효과가 설명돼 있다. 

새말모임 회의 모습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실제 용어 대부분이 외국어였던 호텔의 변화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제주 지역 한 호텔은 '오마카세'를 '맡김차림' 또는 '주방특선'으로 바꿔 부르고 있었고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는 서울 일부 호텔들은 '디스펜서' 대신 '다회용기'로 바꿔 적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여전히 다수 공공기관과 기업이 외국어는 물론 신조어까지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다. 새말모임을 통해 바뀐 우리말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어색함도 여전히 존재한다.

서울 소재 한 신문사에 근무하는 홍모씨는 "외국어나 신조어가 넘쳐 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외국어와 신조어 남용이 세대 간 갈등과 격차를 부추기는 것도 맞다"면서도 "정부에서 외국어와 신조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지만 이를 무조건 직역하듯 우리말로 바꾼 것에는 오히려 거부감이 들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일반 기업체에 근무하는 유모씨는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단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에는 찬성한다. 물론 많은 새말이 '잘 바꿨다'는 느낌을 주지만 일부 바뀐 우리말을 보면 '북한어'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새로운 말들에 대해 낯설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한어 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한에서 실제로 이런 말(쉬운 우리말)을 쓰는지는 모르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건범 대표는 "새로운 말들이 나올 때마다 낯섦은 분명히 있다. 기존에 외국어나 신조어 등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바뀐 우리말을 더 낯설게,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다. 외국어가 없는 상태에서 나온 새말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저는) 물티슈는 물휴지로, 에스컬레이터는 자동계단으로 부른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계속 부르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진다"며 "홈페이지나 SNS 같은 단어도 정부가 그리고 언론이 누리집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로 바꿔 사용하니 어느새 익숙해진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외국어나 신조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상당히 수고롭다.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 덕에 말 뜻이 분명해질뿐더러 우리말 자원도 더 풍성해진다. 쉬운 우리말 쓰기는 우리 문화 발전에도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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